도발적 문제제기는 없고 과격한 표현양식도 드물다. 그러나 시대의 어둠과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은 여전하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개막한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 대한 총평이다.
18일까지 경쟁부문 상영작은 11편. 총 19편이 초청됐으니 반환점을 돈 셈이다. 폐막(23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영화제 분위기는 차분하다. "칸의 레드 카펫이 피로 물들었다"(미국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지난해 평가와는 영 딴판이다. 지난해 칸 스크린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 등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들로 가득 차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올해는 "조용하다"는 평을 넘어 "심심하다"는 표현까지 흘러나온다.
논쟁거리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지만 경쟁작 대부분의 내용은 가볍지 않다.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의 '비명 지르는 남자'는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 국가 차드의 비루한 현실을 직시한다. 우크라이나 영화 '마이 조이'(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길 잃은 트럭 운전수의 사연을 빌어 구 소련 지역의 혼란상을 전한다. 2006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비우티풀'은 시한부 삶 판정을 받은 한 남자의 시선으로 스페인 관광도시 바르셀로나의 빈민가 풍경을 전달한다. 한국 영화 '하녀'와 '시'는 한국 사회의 병리적 현상과 치부를 들춰낸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전찬일씨는 "올해 경쟁작들은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에 방점을 찍고 있다"며 "사회적 문제가 많다 보니 미학적 실험에 몰두할 수 없는 세계 영화계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작들의 완성도도 지난해보다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18일까지 세계 영화인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작품은 영국 마이크 리 감독의 '어나더 이어'다. 중산층 노부부를 중심으로 사랑과 가족, 우정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다.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영국 영화주간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의 일일 소식지로부터 가장 높은 평점인 3.4점(4점 만점)을 받았다.
정글과도 같은 야쿠자들의 세계를 조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일본영화 '아웃레이지'가 가장 혹평을 받고 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평점은 0.9점. '하녀'는 중위권에 해당하는 2.2점으로 수상에 대한 불씨를 살려가고 있다. 국내 한 영화제 관계자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 결국 '어나더 이어'와 '시'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시'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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