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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이팝나무, 배부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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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이팝나무, 배부른 꿈

입력
2010.05.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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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는 이팝나무 꽃이 한창입니다. 이팝나무가 귀한 나무였는데 이제 친근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도시 가로수로도 이팝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하얀 꽃이 수북수북 피어 있는 길을 지나면 두 눈 가득 하얀 꽃물이 드는 것처럼 상쾌해집니다.

이팝나무는 입하 무렵에 쌀밥 같은 흰 꽃이 핍니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그해 쌀농사의 풍년을 꿈꾸었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은현리에 이팝나무 어린 묘목을 구입해 심어놓고 잊어버렸는데 5년이 지나자 올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무지만 푸짐하게 피운 꽃을 보니 윤기 자르르 흐르는 이밥 '한 그륵'을 대접 받은 것처럼 배가 부릅니다. 부른 배가 여러 날 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배불리 먹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당신에게도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림의 떡'은 침만 삼키게 하지만 이팝나무는 배부른 꿈을 꾸게 해서 좋았습니다. 꽃이 좋으니 올해는 풍년이 들 것이고, 풍년이 들면 우리 식구 다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

저는 이팝나무가 가져다주는 그 꿈에 행복했습니다. 올해는 흰 꽃이 제 빛 그대로 맑게 핍니다. 이팝나무 흰 꽃이 좋고 함께 피고 있는 아카시아 흰 꽃이 좋습니다. 그 흰 꽃들 사이에 큰 키 숨기지 못하고 하늘에 보랏빛 등불을 밝히는 오동나무 꽃도 좋은 때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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