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3 교실의 쉬는 시간은 그야말로 수면가스를 뿌려놓은 듯하다. 쏟아지는 잠을 쫓느라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다 동원해 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하지만 사당오락(四當五落)은 옛말이다. 무작정 잠만 줄인다고 능사가 아니다. 청소년기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수면시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아본다.
중고생이 아침잠 많은 이유 있다?
중고교생 자녀를 둔 가정의 아침풍경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깨우려는 엄마와 좀 더 자려는 자녀의 줄다리기가 끊이지 않는다. 밤에는 뭘 하는지 아무리 자라고 재촉해도 자지 않고 버티더니 아침에는 해가 중천에 떠도 한밤중이다.
청소년기에 아침 기상이 어려운 가장 큰 원인은, 공부량과 함께 수면 요구량도 늘어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춘기에 생체리듬이 바뀌는 탓이다. 신홍범 코모키수면센터 원장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청소년은 1주기 주기가 길어지는데, 주기가 길어지면 잠 오는 시간이 늦춰진다"고 말했다. 수면 주기가 늦게 시작되므로 끝나는 시간도 늦어져 밤에는 말똥말똥하다가 아침에는 일어나기가 힘든 것이다.
청소년기 수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침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말이라고 늘어지게 아침잠을 자는 것도 좋지 않다. 낮잠도 저녁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어른에게 10분 정도의 낮잠은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보약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낮잠이 밤의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살 찌는 게 늦잠 원인?
비만과 수면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 관계다. 살찌면 피하지방이 늘어나는데, 이는 기도 주위의 부드러운 조직 밑에 있는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이 부위의 지방이 늘어나면 점막이 안으로 밀고 들어와 기도가 가늘어지면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이 생겨 밤잠을 설친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당연히 낮 동안 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신 원장은 "실제로 비만치료를 받는 청소년 가운데 대다수가 수면리듬이 엉망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잠잘 때 뇌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 기능에 큰 변화가 생긴다. 쉽게 짜증내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힘들며, 기억력도 떨어진다. 특히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상당수는 수면무호흡증에 의한 수면 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부족은 비만을 가속화한다. 오전 시간을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보내고 오후가 돼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뇌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식욕을 부추기고 저녁 늦게 폭식을 유도한다. 또한 낮에 활동량이 적으니 섭취한 칼로리가 차곡차곡 쌓여 더욱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아침잠 많으면 병일 수 있다?
주부 박모씨는 최근 중3 아들의 담임교사와 면담하고 나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아들이 밤 11시에 학원에서 돌아와도 피곤한 기색없이 새벽 3~4시까지 잠들지 못하기에 그저 잠이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아들이 학교에서는 내내 엎드려 자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이 아들은 '지연성수면위상증후군(늦잠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평균 2~5시간 늦게 일어나고, 자기 의지로 이를 도저히 조절할 수 없다면 이 병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이는 생활이 흐트러져 생기는 단순 늦잠과는 다르다. 방학이나 휴가 때 생활리듬이 깨져 늦게 일어나면 수면의 질도 떨어진다. 반면, 지연성수면위상증후군인 경우에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 수치는 정상으로, 수면의 질과 양은 떨어지지 않는다. 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 인구의 6%, 청소년의 10~12% 정도가 이 병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진단은 다각도로 이루어진다. 일단 환자 스스로 수면과 활동 패턴을 기록하게 하고 진찰을 통해 다른 수면장애가 있는지 살펴본 다음, 필요하다면 야간수면검사(수면다원검사), 뇌파검사, 심리검사 등을 시행해 종합적으로 진단한다.
지연성수면위상증후군이 확인되면 저녁에 밝은 빛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이른 아침에 밝은 빛을 쏘여야 한다. 홍승철 가톨릭대 의대 성빈센트병원 정신과 교수는 "특히 낮이 긴 여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30분~1시간 동안 햇빛을 쬐는 일을 반복하면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태에 따라 광(光)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햇빛에 가까운 2,500~1만 럭스의 빛을 쬐어 멜라토닌 분비를 줄이고 생체리듬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방법이다. 멜라토닌제제를 먹는 방법도 있다. 다만 멜라토닌제제는 양과 복용 시기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한 뒤 먹어야 한다. 주로 초저녁에 먹으면 수면시간을 앞당길 수 있고, 아침에 복용하면 잠자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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