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전자는 인종에 관계없이 99.9% 이상 동일하다. 0.1% 정도의 유전적 차이가 키나 머리색깔, 피부 등의 신체적 차이를 만든다. 이 미세한 유전적 차이는 외모뿐만 아니라 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데도 관여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환자의 유전 정보를 해독할 수 있다면, 질병 발생과 치료법, 효과에 대해 예측하는 '맞춤약물치료' 시대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실제 이러한 유전자 차이에 기반한 맞춤치료는 암 치료에서 이미 시작됐다.
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검진이다. 최근 건강검진이 활성화되고 수검률이 늘고 있지만,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진단 받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폐암이 대표적이다. 폐암은 다른 종양에 비해 진행속도가 빠르고 초기 증상이 거의 없기도 하므로 뒤늦게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전체 암 중 사망률 1위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비(非)소세포 폐암은 폐암 환자 중 80~85%를 차지하는 암으로,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는 일반적으로 표준 화학치료요법을 시행한다. 화학치료요법의 경우 생명을 연장하고 증상을 완화하지만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암세포뿐만이 아닌 주변 정상조직까지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항암제 특성 때문이다.
이러한 화학치료요법의 대항마로 최근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개인의 유전학적 특성에 따른 맞춤 치료법이다. 맞춤 치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이오 마커다. 바이오 마커란 환자의 생리학적, 약물학적, 질병 진행을 나타내는 측정 가능한 '생체 지표'를 의미한다. 바이오 마커를 통해 특정 환자에게 약물의 효과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맞춤 항암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최근 폐암표적치료제 '이레사'가 '표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EGFR) 돌연변이'라는 바이오 마커가 있는 환자에게 1차 치료제로 쓸 수 있게 됐다. 바이오 마커를 활용해 1차 치료요법으로 화학요법이 아닌 표적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획기적인 일이지만, 항암 치료로 겪는 부작용을 크게 줄여 삶의 질을 높이게 된 것도 큰 성과다. 표적치료제를 1차 치료제로 활용함으로써 폐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마커에 따른 맞춤 치료를 최적화하려면 치료에 앞서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하는 검사를 해야 한다. 특히 폐암의 경우 병 진행이 빠르므로 EGFR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적합하지 않은 환자군과 치료효과가 기대되는 환자군을 먼저 선별할 필요가 있다.
폐암을 비롯한 암 치료에 유전학적 특성에 따른 맞춤치료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치료개념에 대한 환자와 의료진의 인식,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표적치료에 대한 장밋빛 미래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환자 특성에 맞는 다양한 치료법을 제공해 암도 관리 가능한 시대를 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자 과제다.
김상위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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