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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4부 7. 스타 기능인 CEO 열전 - 김영모 과자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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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담금질…기능이 미래다] 4부 7. 스타 기능인 CEO 열전 - 김영모 과자점 사장

입력
2010.05.1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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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의 비결 늘 공개하며 더 빵빵한 1000년 빵집 꿈 꿉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는 이혼, 어린 시절을 친척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보냄.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7살에 빵집 보조 일을 시작.' '까다롭기로 유명한 서울 강남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4개의 빵집과 1개의 카페로 연간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제빵사 겸 CEO.'

같은 사람의 이력이라 기엔 믿기 어려울 만큼 생의 극적인 반전을 이룬 사람이 있다. 김영모과자점의 김영모(57) 사장. 초등학생 시절 하교 길 학교 앞 빵집에 진열된 빵을 구경하며 허기를 달래야 했고 얹혀 살던 이모집을 뛰쳐나와 폭행 사건에 휘말린 고등학생 때는 합의서를 써 줄 가족이 없어 소년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런 그가 2007년 기능인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제과 명장에 선정됐고, 2003년부터 2008년 초까지는 대한제과협회 회장을 지냈다. 그에게 빵은 슬픔인 동시에 기쁨, 즉 인생 그 자체다.

그를 마주한 후 무엇보다 인생 대역전의 비결이 궁금했다. 프랑스의 최고제과 기술자 앙토낭 카넴의 말을 인용한 그의 한마디에 모든 답이 담겨 있었다. "좋은 빵과 과자는 어떻게 만든다고 생각합니까? 물질? 행운?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연륜이 좋은 빵과 과자를 만듭니다. 제게는 당시의 힘든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든 원동력인 셈이지요."

그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손으로 빚어 내는 기능인은 손에 기술을 익히기까지 굉장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루 2시간씩 잠을 자며 좋은 빵 만들기에 매달렸고 빵 반죽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는 그다. "무엇보다 물질적인 가치보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내게 되니까요."

이 같은 노력으로 1982년 서울 서초동에서 아내와 단둘이 시작한 조그마한 빵집은 어느새 직원 수만도 100명이 훌쩍 넘는 기업형 빵집으로 성장했다. 김 사장은 젊은이들이 뽑은 '존경하는 CEO' 목록에 대기업 대표들과 더불어 단골로 오르내리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최근 일주일간 일본에 다녀왔다. 2008년에 출간한 일본 제과점 여행기 의 내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는 그가 60,70년에서 1,000년에 가까운 세월까지 장수하는 일본의 전통 과자점을 직접 탐방한 기록이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며 전통을 이어가는 일본 과자점의 모습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특히 제빵사인 동시에 경영자인 그에게 이 같은 지적인 자극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경영자이면서 생산의 책임을 맡고 있는 오너 셰프는 자기 역할이 빠지면 경영이 전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죠. 이걸 피하려면 다른 직원들도 얼마든지 나를 대신할 수 있도록 철학부터 차분히 지도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를 쓴 것도 그래서죠."

그는 또 오너 셰프로서 자만심을 경계했다. 기술인이 경영자로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 그들이 인정해 주는 제품을 만들기보다 무작정 '내가 만든 제품이 최고'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는 저술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김영모과자점의 레시피다. 등 누구나 쉽게 김영모과자점의 대표 제품을 만들어 볼 수 있게 했다.

작은 기술 하나까지도 보안이 중요한 경쟁의 시대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노하우 공개가 한국 제과ㆍ제빵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리라 믿는다. "우리 과자점은 장기 근속자가 참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우리 빵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지 않으면 다 같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제과점에서 우리 레시피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전이 오는 일종의 부메랑 효과가 나타날 수 있죠. 제 자리에 안주해서는 발전이 없는 법입니다."

그는 후배 기능인들도 지식 습득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아무리 기능인이 인정 받는 시대가 됐다지만 기술만 익혀서는 요즘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온도나 반죽의 비법만 익힐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의 특성 등을 함께 익혀야만 창의력이 돋보이는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천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일본 과자점을 돌아보면서 전통이 계승되는 현장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는 그는 "이제 한국 제과업계에서도 전통을 이어가는 장수기업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분명한 목표가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세웠는데 그게 이뤄졌다고 해서 안주하기보다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워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고, 또 그게 건강에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미 40년간이나 제빵에 매달려 온 그에게서 이런 열정은 어떻게 해서 계속 뿜어져 나올 수 것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면 누구에게서나 열정은 저절로 솟아나게 마련 아닌가요." 인터뷰에 동석한 큰아들 재훈씨가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 가업 잇는 두아들 "장수 기업 메카로"

김영모 사장의 명함과 김영모과자점의 홈페이지에는 두 명의 제빵사가 나란히 서 있는 스케치 아래에 김영모&피스(KIM YOUNGMO&fils)라고 적힌 로고가 들어 있다. 피스(fils)는 아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장남 재훈(30)씨와 차남 영훈(29)씨가 가업을 잇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재훈씨는 현재 도곡타워팰리스점에서 근무하며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빵사의 길을 선택해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영훈씨는 2년 후 귀국해 김영모과자점에 합류할 예정이다.

먼저 빵에 관심을 보인 것은 둘째 영훈씨였다. 김 사장이 중학생이 된 두 아들을 함께 영국으로 유학 보낸 것도 어려서부터 제빵사만 고집해 온 둘째 아들의 어학 실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영훈씨는 영국으로 떠난 지 4년 6개월여 만에 프랑스로 거처를 옮겨 제과ㆍ제빵 공부를 시작했고 2003년에 프랑스 제과월드컵에서 개인상을, 스위스 국제기능올림픽 제과부문 동메달을 수상하는 등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다. 지금은 프랑스 정부가 지정하는 최고 기술 자격자(MOF) 취득 시험을 준비 중으로,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응시 자격을 따냈다.

첫째 재훈씨는 동생이 프랑스로 떠난 후에도 영국 유학 생활을 계속했다. 한때 컴퓨터그래픽에 큰 매력을 느꼈지만 가업의 기대감과 책임감으로 자연스럽게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재료 구매와 창고 관리, 제품 출고 등 말단 사원 업무부터 시작해 김영모과자점에 근무 중인 그는 전공을 살려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아버지가 김영모과자점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기까지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왔는지 잘 알기에 제품이 자칫 사장되는 일이 없도록 고객과 대화하는 적절한 방법을 찾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게 영훈씨의 말이다.

김 사장은 "내심 가업을 이어 주길 바랐지만 아이들의 진로는 철저히 스스로 선택하게 가르쳐 왔다"면서도 "첫째가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결국 두 아이 모두 제과ㆍ제빵업에 뛰어들 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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