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일색이 아니니 많이 달라지긴 했다. 칸에서 보내온 에 대한 반응이 매정하다. '진부한 게임''케케묵은 상투''깊이 부족''영화적 흥분을 자아내지 못했다''동기 불명확' '관객 설득에 실패'.
현지의 낮은 평점과 함께 아예 "찬사를 받지 못했다"거나 "50년 전(김기영 감독)의 원작에 못 미쳤다"고 제목을 붙인 기사도 있다. 그렇다면 에만 이런 혹평이 나왔을까. 아니다. 과거 칸에 간 한국영화에도 있었다. 다만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했을 뿐이다. 수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것이 영화에 대한 배려이고, 애국행위라고 착각했다.
한국영화는 갔다 하면 '극찬'
한국영화 비판이'금기'인 시대가 있었다. 한국영화는 부족하고 엉성해도 말을 못했다. 안 그래도 힘들게 할리우드와 싸우고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는 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국영화 존재 자체가 애국이고, 제작자는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1990년대 말, 한국영화가 치마폭에 싸여 있어서는 발전이 없다는 생각에 금기를 깨자 '매국노'라고까지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칸영화제의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임권택 감독의 이 사상 처음 본선에 진출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늘 '격찬'이었다. 처음에는 기립박수가 모든 영화에 대한 '의례'인 줄도 모르고 수상을 하게 되는 것처럼 흥분했다. 노(老) 제작자가 칸의 붉은 카펫을 밟아보는 것(본선 경쟁 진출)이 소원이라며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영화는 꾸준히 칸에 나갔고, 수상도 여러 번 했다. 수상과 영화적 완성도, 평가는 별개라는 사실도 알았다. 칸이 더 이상 '순수와 예술의 마당'이 아니라 '정치적ㆍ상업적 잔치'인 것도 확인했다. 유럽의 경쟁자(베니스, 베를린 영화제)를 견제하기 위해 칸은 철저히 자기 식구를 만들고, 키우고, 감싼다. 흥행을 위해서는 '회원제'처럼 스타감독만 받아들이고, 할리우드와 야합하기도 마다 않는다.
올해도 칸영화제는 예외 없는 식구들 잔치다. 한국영화만 봐도 이창동 감독의 가 그렇고, 3년 전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전도연의 가 그렇다.'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된 의 홍상수 감독은 칸 단골손님이고, '비평가 주간'에 얼굴을 내민 의 장철수감독은 김기덕의 제자다.
유난히 초청이 많은 것에 대해서도'좋은 한국영화가 많아서'라든가 '칸의 애정'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영화산업 침체로 올해 유럽과 제3세계에 작품이 별로 없다. 어느 때보다 빈약한 초청작, 썰렁한 필름마켓이 증명한다. 그나마 칸영화제에 아직도 목을 매고, 추락한 영화산업을 살리려 정부까지 발버둥치는 한국이 있다는 것이 칸으로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아직 가 공식 상영(20일)을 하지 않아 어떤 평가가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결과에 관계없이 이번에도 칸은 한국영화에 선물(수상)을 줄지도 모른다. 정치적 고려에서든, 지역안배에서든, 지난해 심사위원(이창동 감독)이나 칸의 배우(전도연)에 대한 배려에서든, 세계에서 가장 열렬한 한국 영화의 '칸 사대주의'를 이어가게 할 것이다.
언제까지 칸에 목매야 하나
이제 그만 칸영화제에 집착하거나, 호들갑 떨지 말자. 과장된 찬사와 의미 부여는 아직도 칸만이 한국영화의 이데아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국내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뿐이다. 칸 영화제도 유럽, 아니 좁게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영화제의 하나일 뿐이다. 유명 감독들이 하나같이 칸영화제 일정에 맞춰 작품을 완성하려고 발버둥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 최고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칸과의 경쟁은 고사하고 칸의 눈치만 본다. 문화사대주의가 별것 아니다.
에 대한 비교적 솔직한 현지 평가와 반응을 보면 유럽이라고 눈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고, 칸에 간 영화는 무작정 높여보는 시대도 지났다. 13일 와 가 나란히 개봉했다. 많은 관객들은 에 실망하고, 는 언론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개봉 첫 주말 3만7,000여명만 찾을 정도로 썰렁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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