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야간집회금지 규정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이 계속 미뤄져 법원 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헌재와의 기관 갈등이 빚어질 것을 염려해 판단을 미룬 채 해당 법조항의 개정 시한인 다음달 30일까지 기다려 보겠다는 입장이어서 일선 판사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헌재가 형벌조항에 대해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중 야간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라는 변형 결정을 내린 데서 비롯됐다.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이유를 들어 올해 6월 30일까지 법을 개정하도록 국회에 말미를 준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변형 결정도 헌재의 결정"이라며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주문대로 따르면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입장에선 사실상 위헌인 법률을 적용해 피고인을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부 법관은 헌재 결정대로 해당 법조항의 효력을 인정해 유죄를 선고하거나, 법개정 때까지 재판을 유보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1심)들은 위헌성이 인정된 형벌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사회정의에 반한다며 지난해 10월 이제식 판사가 첫 무죄 판결을 한 이후 연이어 5건 이상 무죄를 선고했다.
소장법관들은 "헌법불합치도 위헌의 일종이고, 사실상 효력을 상실한 조항을 법관으로서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서 밝혔다. 뿐만 아니라 "관련법이 개정되더라도 이를 적용하는 것은 형벌불소급 원칙에 반하고,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나중에 재심 대상이 된다"는 법리(法理)를 들었다. 즉, 헌법재판소법상 위헌 결정된 법률로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을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에 헌법불합치도 포함된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하급심의 혼선에 대해 항소심은 물론 대법원도 묵묵부답이다. 실제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지난해 말 모두 항소됐지만, 다섯 달이 넘도록 재판기일 지정도 안 되고 있다. 일각에선 상급심이 본연의 기능을 회피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 고위관계자는 "시점을 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기존 법조항의) 잠정적용 기간에 무죄를 선고하면 헌재와 힘겨루기로 비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 국회 상황을 볼 때 시한 내 법 개정이 어려워 보여 그 이후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지난달 여야가 개정안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다음달 다시 논의하기로 했으나, 합의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렵다. 다음달 30일까지 해당 조항이 개정되지 않으면 이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을 잃게 돼 법원이 법 적용을 놓고 더 이상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나 일선 판사들은 헌재가 추후 다른 형벌조항에 대해서도 변형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만큼 혼란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법원이 확정 판례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계속 기소되고 있는 피고인들을 위해서라도 유죄든 무죄든 판례를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지난해 헌재 결정 이후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피고인은 231명으로, 상당수는 야간옥외집회금지 규정이 적용됐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를 지낸 김갑배 변호사는 "법은 명쾌해야 하고 국민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통해 이를 공고히 하는 것인데 머뭇거리는 것은 법적 불안정성만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지윤기자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