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스물여섯 살 미대생은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어느 날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을 비디오로 보게 됐다. "'좋은 영화는 김 감독이 다 만들겠다'는 위기감이 느껴져" 머리가 멍해지며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김 감독을 찾아가 연출부에 들어갔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로 제63회 칸 영화제 비공식 부문인 '비평가주간'에 초대된 신예 장철수(36) 감독이 영화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과정이다.
쟁쟁한 영화들이 모여 우열을 겨루는 칸에서 '김복남…'은 작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고 섬의 환경이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졌다"고 호평을 했다. 외신들의 인터뷰 요청도 밀물 같아 20곳 가량의 매체가 이미 그와 만났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장 감독의 데뷔작인 '김복남…'은 섬에서 짐승 같은 남편의 폭력과, 마을 사람들의 묵과를 피로 응징하는 한 여인의 처절한 복수극을 그린다.
폭력과 부도덕과 무관심이 횡행하는 영화 속의 섬은 한국사회의 축소판에 다름아니다. 김 감독은 "밀양 여중생 사건 등 잘못을 저지르고도 너무 당당한 우리 사회의 파렴치한 모습들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비평가주간은 장편영화 한두 편만을 만든 유망한 신진 감독들의 영화를 상영한다. 장 감독은 출발부터 재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칸 영화제가 최우수 신인 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 후보이기도 하다. 스승인 김 감독의 뒤를 이어 칸 영화제에 온 데 대해 그는 "흐뭇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영화를 싫어했다"고 말했다. "왜 돈 내고 영화를 보는지 의아했고, 에로비디오나 TV방영 영화를 본 게 전부였다"는 그는 "재수할 때 '택시 드라이버'와 '시네마 천국'을 보고선 충격을 받았다. 좋은 영화가 힘든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장 감독에게는 '해안선' 등 3편의 작품을 함께한 김 감독의 영향이 짙다.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눈을 떼게 하면 안 된다'는 김 감독의 말을 되뇌며 이번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해안선' 찍을 때 일이 너무 힘들어 배우와 스태프들이 도망을 갔다. 그때 김 김독님이 '나 혼자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풀이나 물고기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 생존 능력을 배운 듯하다."
칸=글·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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