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로댕 미술관의 전시실 하나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조각 전시실에도 그녀의 작품은 로댕의 대작들 사이에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로댕 작품을 보러 갔던 관람자가 자연스럽게 클로델이라는 조각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동선이 만들어져 있다. 두 사람 작품의 유사성을 통해 관람자들은 로댕의 명성에 가려져 빛을 볼 수 없었던 클로델의 비운에 동정심을 갖는다. 다음 순간 결코 의심해 본적이 없던 로댕 작품의 위대함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으며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묘사되는 클로델. 19살의 클로델을 처음 만난 로댕은 미모와 재능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두 연인은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서로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무렵 로댕은 , 처럼 사랑에 빠진 연인상을 만들었다. 사랑과 영감의 교차 속에 만들어진 이 시기 두 사람의 몇 작품은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클로델 또한 로댕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 성향의 작품을 만들었다. 로댕에게 클로델은 작품의 영감을 주는 뮤즈였지만 클로델에게 로댕은 인생의 전부였다. 그것이 그녀의 비극이자 클로델 예술의 정점이기도 하다.
조강지처와 다름없는 로즈 뵈레를 떠나지 못하는 로댕에게 클로델은 사랑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의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결국 심한 언쟁 끝에 로댕을 떠난다. 하지만 로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녀의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같은 작품은 모두 로댕과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당신 두상을 만들 거예요 / 흙으로 빚고 석고를 떠서 내 방에 놔두겠어요 / 사랑이 식을 때 쉽게 깨뜨려 버리게요"라고 했던 한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그녀의 예술은 언제든 깨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녀의 대표작은 모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사선 구조로 되어있다. 한 쌍의 남녀가 껴안고 춤을 추는 처럼 작품을 지배하는 기울어진 형태야 말로 로댕을 벗어나 온전하게 홀로 설 수 없었던 자신의 불완전한 일생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장 잘 설명하는 극적 구조이다.
자신의 예술적 성공에 충실하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로댕을 극복해야 했으나 클로델은 이미 사랑하기 때문에 연약해져 버린 여인이다. 그녀가 로댕에게 보이는 애증은 자신의 이름대신 남편의 이름으로 살아온 보통의 아내들이 갖는 상실감과 비슷하다. 열렬히 로댕을 사랑했고 젊음과 재능, 모든 것을 헌신했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자의식의 허탈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랑과 예술이라는 이름의 욕망을 포기하고서야 클로델은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였다. 소나기 같은 젊음의 격정이 지나고 나서 비로소 로댕을 극복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동생 폴 클로델에게 편지를 보낸다.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클로델을 영원히 떠날 수 없었던 사람은 로댕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건립되고 있는 로댕 미술관에 클로델의 작품을 소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거장의 요청으로 두 사람의 작품은 영원히 한자리에 놓일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두 사람의 예술적 교류와 사랑은 그들의 작품에서처럼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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