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외국인 체류자, 국제결혼 등으로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20년 무렵에 태어날 신생아 3명 중 1명(32%)이 혼혈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오랜 세월 ‘단일 민족’을 자랑처럼 여겨왔던 우리는 다양성에 익숙해질 역사적 기회도 없었다. 피부색으로 인한 갈등의 골을 서둘러 치유하지 않으면 국가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협 받을지 모른다.
오랫동안 인류학자들은 피부색에 따라 백인종·흑인종·황인종 등으로 인종을 구분했다. 19세기 초 혈액형의 존재가 처음 발견됐을 때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인종의 존재를 재확인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에서는 B형이 이민족의 특성을 가진 혼혈의 상징이며, 순수한 아리안족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인종 연구의 역사는 선입견의 산물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현대 과학은 ‘인종’이란 용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유전자는 모두 동질적
유전학자들이 지구상의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인류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모두 동질적임이 밝혀졌다. 이토록 드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도 동질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이 인류 조상들의 생활 조건과 그들의 유전자가 전해진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인류는 아프리카 또는 서남아시아 특정 지역(아마 이곳이 ‘에덴’일 것이다)에서 기원전 15만 년~10만 년에 출현했다고 한다. 인구 3만 명 가량이었던 ‘에덴’ 거주자들이 기원전 10만 년경부터‘지구 대정복’에 나서 5개 대륙을 누볐고, 그 결과 현대 인류가 있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피부색은 거주 지역에 따라 달라졌을까? 피부색의 세계분포를 살펴보면 그것이 일조(日照) 지도와 정확하게 일치함을 볼 수 있다. 햇볕이 잘 드는 지역 사람들은 피부가 짙고, 그렇지 않은 지역 사람들은 피부가 밝은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된다. 현재 옷을 입지 않고 사막에서 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보다, 파도 타기를 즐기는 스웨덴 출신의 금발 서퍼(surfer)들이 피부암에 더 잘 걸린다.
그러므로 더운 지방에 사는 밝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높은 사망률로 도태되어 후손들이 적어졌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햇빛이 약한 지역에 사는 짙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은 밝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에 비해 비타민 D 합성능력이 떨어진다. 이 경우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구루병의 위험에 더 노출된다. 그러므로 선사시대에 추운 지역에서 출생한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구루병에 더 많이 걸렸을 것이고, 세대가 바뀌면서 밝은 색 피부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았으리라는 것이 학자들의 가설이다.
피부색 구분 타당성 없어
인류의 조상들이 대이동을 한 후 피부색이 바뀌는 데는 얼마나 걸렸을까? ‘수 백 세대’ 정도면 확실한 변화가 일어난다. 아메리카 인디언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기원전 2만 년에서 기원전 5,000년 사이에 아메리카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늘날 캐나다나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사람들보다 과테말라나 콜롬비아에 정착한 사람들이 출생 시에 피부색이 훨씬 더 짙다. 요컨대 피부색의 차이가 고정되는 데는 1만 5,000년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부색으로 인류를 구분하는 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아파트 같은 층에 살면서 혈액형이 다른 이웃사람의 혈액보다는, 자신과 같은 혈액형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의 혈액을 받는 게 훨씬 낫다. 흑인·백인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우리는 이미 다인종 사회로 접어들었다. 외국인에 대한 ‘비과학적 편견’을 털어낼 수 있도록 사회 각 분야의 교육과 계도가 더욱 강화되어야겠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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