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집값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가계의 채무부담을 증가시켜 추가적인 집값 하락을 부르는 '부채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채 디플레이션이란 빚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물가(집값)가 하락해 실질 채무부담이 상승하면 결국 빚을 갚으려고 담보로 맡긴 자산(집)을 처분해 다시 물가(집값)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는 현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6일 '주택시장의 부채 디플레이션을 예방해야 한다'는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 주택시장은 가격이 하락하고 거래량마저 줄어들고 있어 부채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원은 최근의 집값 하락은 극심한 수급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주택 공급은 넘쳐나는 반면, 체감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일반 소비자의 주택 수요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급 분야에서는 정부 대책에도 불구, 수도권 미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반면 체감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가계소득에 의한 주택구입 능력은 여전히 저조하고,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채무부담 증가로 차입을 통한 주택구입 여력도 크게 줄어든 상태다.
연구원은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인 불일치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내 주택시장에 부채 디플레이션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산업연관 및 고용유발 효과가 큰 건설경기가 위축돼 실물경기가 악화하고 빚 많은 개인의 파산이나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연구원은 주장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도 기업이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하락하면서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돼 경제 전체가 뒷걸음치는 악순환을 보였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덕배 전문연구위원과 정유훈 선임연구원은 "최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주로 건설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맞춰져 있지만, 이보다 주택 수요를 북돋우고 거래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펴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덕배 연구위원은 "급격한 출구전략 시행을 자제하고, 무분별한 신도시 건설 및 도심 재개발 등 공급확대 정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가계대출 만기를 선진국처럼 20~30년 정도로 장기화하고 금융회사의 연체율을 줄이는 한편, 미분양 주택 물량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내놓아 시장에서 소화되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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