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편집ㆍ이덕환 옮김/까치 발행ㆍ512쪽ㆍ2만5,000원
1660년 11월 30일, 영국 신사 10여명이 젊은 학자 크리스토퍼 렌의 천문학 강연을 들으려고 런던의 그레셤대학에 모였다. 호기심 많고 탐구열에 불타던 이들은 이 자리에서 새롭고 논쟁적인 실험과학을 공부할 단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국의 '왕립학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왕립학회는 전문 과학자와 시민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유용한 지식을 증진시키자며 만든 단체다. 왕립학회의 역사는 곧 과학의 역사다. 뉴튼과 다윈 등 과학사의 거인들이 다 회원이었다. 매주 모여 과학 실험을 참관하고 토론하면서 이들은 과학의 진보를 공유하고 확산시켰다. 왕립학회는 영국 과학계의 양심으로서, 과학아카데미이자 과학정책 자문기구 역할을 해왔다. 초기부터 국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해 유럽과 미국 과학자들도 받아들였다.
은 왕립학회가 올해 창립 350주년을 맞아 펴낸 과학 에세이다.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영국 작가 빌 브라이슨이 편집을 맡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천문학자 폴 데이비스 등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 22명이 글을 썼다. 왕립학회의 발자취도 다루지만, 그보다는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과학적 성과와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과 논쟁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필자마다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왕립학회 초창기의 기괴한 탐구 열풍과 미친 과학자의 초상을 추적한 글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뉴튼 물리학이 일으킨 세계관의 변혁과 그로 인한 신학적 논쟁, 우주론의 변천사와 오늘날 최신 우주론이 제기하는 존재론적 의문, 기후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한 시사적 논의, 과학 방법론을 둘러싼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갈등과 통합, 세상의 종말에 대한 과학과 인문학의 대답, 생물다양성의 개념, 수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검토 등 과학과 인문학의 깊고 풍성한 조합을 보여준다.
읽기에 어렵지는 않다.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전문가들이 쉽게 쓴 덕분이다. 필자들은 과학의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고 폭넓은 통찰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책은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두려움 없이 탐구하며 진리에 헌신해온 수많은 이들에게 바치는 꽃다발과 같다. 왕립학회 회원인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결론으로 쓴 글에서 과학의 미래를 옹호하며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게 많고, 세상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으니, 탐구를 멈추지 말자"고 격려한다. 왕립학회 350주년을 기념하는 데 가장 걸맞은 메시지라 하겠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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