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너 폴리 지음ㆍ노시내 옮김/마티 발행ㆍ312쪽ㆍ1만5,000원
내전과 분쟁으로 기아와 폭력, 학살의 위험에 노출돼 있거나 혹은 지진,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제3세계의 국가들. 이런 나라들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지원은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이뤄진다. 보편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는 이 인도주의라는 명분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 등에 근무하며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등 분쟁ㆍ재해지역에서 20여년 간 활동가로 일했던 카너 폴리는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지원의 적실성과 진실성에 의문을 던진다. "인도적 지원의 목적은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있지만 고통을 심화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체험을 통해 그가 끌어낸 결론이다.
1967~70년 발생한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내전은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진행됐던 서구 국가들의 지원이 어떤 역설을 낳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내전에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들이 지원에 뛰어들었다. 이들 국가는 적극적 중재에 나서기보다는 내전 당사자였던 양쪽 부족을 다 지원했는데 그 결과 일찍 종결될 수 있었던 내전이 1년 반 이상 연장되는 비극을 낳았다는 것이다.
구호단체들의 지원이 비효율적인 경우도 있다. 저자는 "구호단체들은 지명도 높은 재난을 쫓아다닌다"는 말로 이런 현상을 비판한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사태 때는 피해자 1인당 7,100달러가 넘는 지원금이 지원됐는데, 이는 그 1년 전 방글라데시 홍수 수재민들에 대한 1인당 3달러의 지원액과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저자는 당시 집 잃은 사람들이 원조받은 모직 점퍼와 미니스커트를 처치할 수가 없어 불쏘시개 삼아 불을 지피는 광경도 목격했다고 한다.
저자는 인도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이름으로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경우에는 혹독한 비판을 가한다. 정당성도 성과도 없었던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같은 경우다. 그는 쓰나미 사태 이후 펼쳐진 구호활동처럼 무해한 종류의 인도적 개입조차도 경제ㆍ사회적 왜곡, 의존성 강화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고 본다. 동의하건 아니건 "인도주의는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인 것이다"는 그의 지적은 인도주의 이면의 역설적 진실을 담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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