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탁환ㆍ정재승 지음 / 민음사 발행ㆍ전 2권ㆍ각 권 1만5,000원
소설가 김탁환(42)씨와 뇌과학자 정재승(38)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가 공동 집필한 과학소설(SF)이다. 김씨가 KAIST 교수로 재직할 당시 디지털 미디어에 적합한 서사 방식을 모색하는 학내 연구실을 함께 운영했던 두 사람은 2008년 이 작품을 구상, 1년 여의 집필을 거쳐 책을 출간했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동명 저서에서 제목을 딴 이 소설은 뇌과학, 로봇공학 분야의 과학적 사실과 법칙, 향후 과학기술의 발전 추이에 대한 합리적 예측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하드SF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소설의 무대는 2049년 서울. 웬만한 사람들은 신체 일부를 기계 장치로 대체하고, 인간과 로봇 간의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첨단 로봇공학의 시대다. 서울 뒷골목에서 뇌를 탈취당한 시체가 잇따라 발견된다.
사람 뇌의 전전두엽에 저장된 단기 기억을 영상으로 복원하는 기법을 개발해 살인범 검거에 개가를 올려왔던 보안청을 무력하게 하는 지능적 살인 수법이다. 보안청의 은석범 검사팀은 이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중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로봇 격투기 대회를 둘러싼 음모에 휘말린다. 그곳에선 인간을 희생시켜 격투기 로봇의 전투력을 높이려는, 뇌과학을 빙자한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
과학적 엄정함을 유지하면서 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야무지게 구성한 솜씨가 김씨와 정씨의 결합이 '물리적'이 아닌 '화학적' 수준에까지 나아갔음을 방증한다. 상대가 절명할 때까지 계속되는 로봇 격투기에 대한 격렬한 묘사, 애정 결핍을 앓는 은석범의 로맨스 등 대중소설의 코드도 곳곳에 배치, 하드SF가 자칫 건조한 지적 유희로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인간과 로봇, 이들의 합성체인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소설 속 미래사회의 풍경은 뇌과학을 비롯한 사이버네틱스가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_과연 무엇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_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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