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싹을 좀처럼 피우지 못하고 있는 '황무지' 한국육상에 오랜만에 '단비'가 내렸다. 그것도 두 차례나 흡족하게 뿌렸다.
단비의 주인공은 올해 16세, 앳된 얼굴의 고교 1년생 염고은(김포제일고ㆍ사진)이다. 키 155cm, 몸무게 38kg으로 초등학생 같은 체격이다. 입으로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몸매의 염고은에 대해 육상계가 "신동이 탄생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3일 창원에서 폐막된 제39회 종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여고부 5,000m에 출전한 염고은이 15분38초로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우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밟은 것이 첫 번째 단비라면 1,500m에서 4분22초의 대회신기록이 두 번째 단비였다.
육상 관계자들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800m, 1,500m, 3,000m를 석권해 3관왕에 올랐던 임춘애가 다시 나타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염고은의 5,000m기록은 마라토너 이은정(29ㆍ삼성전자)이 2005년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세운 한국기록(15분41초)을 5년 만에 3초 가량 줄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학교(김포 금파중)때까지 3,000m만 뛰다가 고교 진학과 함께 첫 5,000m 도전에서 한국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김포 양곡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시작한 염고은이 육상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은 금파중학교에 진학, 오영은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다. 오코치는 당시 염고은의 키가 140cm, 몸무게는 31kg에 그쳐, 너무 왜소해 꺼렸지만 하체와 상체의 비율이 7대3으로 육상선수로 안성맞춤인 신체특성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오코치는 염고은의 장점에 대해 "지구력, 폐활량과 함께 피로회복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피로 회복력은 장거리 레이스도중 쌓인 피로를 순간순간 회복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는 이어 "고은이가 스스로 운동을 즐기고 보강운동을 통해 몸을 잘 관리하기 때문에 슬럼프와 부상도 없다"고 덧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초시계를 오른손에 쥐고 뛰는 염고은의 독특한 버릇이다. 레이스 중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 초시계를 쥐고 뛰는 이유는 페이스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출발할 때 꼴찌로 나서지만 골인할 때 맨 먼저 들어오는 것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오코치는 "고은이가 보통 400m 트랙 한 바퀴를 75초에 주파하지만 마지막 400m에선 68초를 찍는다"며 막판 스퍼트 능력을 칭찬했다.
염고은은 올해 목표로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을 꼽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2012년 런던 올림픽 5,000m에서 메달을 캐내겠다"며 "트랙보다 거리에서 달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해 마라톤 도전 의사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황규훈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장거리 선수로 흠잡을 데 없는 주법으로 대성할 자질을 갖췄다"고 평했다.
글ㆍ사진=최형철기자 hc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