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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시리도록 눈부신 봄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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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plus/ 여행 - 시리도록 눈부신 봄이 피었다

입력
2010.05.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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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을 덮친 북풍의 기세는 매서웠다. 계절을 잊은 거리에서 화신(花信)은 속절없이 끊겼다. 그 어느 해보다 빠른 속도로 꽃잎을 닫은 벚나무들, 예고편으로 만족해야 했던 거장의 작품을 아쉬워하듯 2010년의 봄이 지던 날. 손을 떨치고 돌아선 연인을 불러 세우는 마음으로 일본 아오모리(靑林)현 히로사키(弘前)시의 늦은 벚꽃축제를 찾았다.

일본 혼슈(本洲)섬의 최북단에 있는 아오모리현은 홋카이도(北海道)를 마주보는 곳으로 우리보다 20여일 이상 늦게 계절이 바뀐다. 지평선을 온통 하얗게 뒤덮은 북국의 설경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4월 말이면 아오모리현 히로사키는 일본 최대의 벚꽃축제로 술렁인다. 떠난 줄 알았던 님이 저만치 멈춰선 채 손을 흔들어 보이듯, 때를 놓쳤던 상춘객의 마음은 설렌다.

히로사키의 벚꽃축제는 벚꽃의 나라인 일본에서도 제일이다. 4월말에서 5월초로 이어지는 사쿠라 마츠리(벚꽃 축제) 기간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250만명을 넘을 정도다. 올해 히로사키의 벚꽃은 평년보다 다소 늦은 4월27일 개화해 5월3일 만개했다. 늦었지만 알이 굵어 멀리서 쳐다보면 함박눈 덩어리로 보이는 왕벚나무를 비롯해 실벚나무, 겹벚꽃 등 50여 종이 넘는 벚나무들은 예년보다 더욱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렸다.

늦봄의 하늘과 거리가 눈사태라도 맞은 듯 한 시에 몰려온 벚꽃에 매몰되면, 사람들은 20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벚꽃 가로수길 '오야마 자쿠라'를 지나 축제의 중심인 히로사키성으로 모여든다.

1611년 완공된 쓰가루(津軽)가의 거주지 히로사키성(1811년 일부 재건)은 성벽을 대신한 3겹의 해자로 둘러싸인 건축물로 일본 고유의 풍경을 담고 있다. 히로사키성은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에도(江戶)시대 이전 일본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관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도쿄돔 10개 정도를 이어 붙인 규모(49만2,000㎡)의 성내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2,500여 그루의 벚나무 군락. 푸른 해자의 수면에 비쳐 자태를 뽐내는가 하면, 하얗다 못해 시리도록 분홍빛인 꽃잎으로 관광객의 눈을 멀게 한다.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시야를 채운 벚꽃의 무리는 즙을 가득 머금은 과실을 한 입 가득 베어 물었을 때처럼 신선하다. 손에 손을 잡고 해자 위 다리에 오른 관광객들은 앞다퉈 벚꽃 풍경을 담으려 점령군처럼 성내를 가득 채운다. 하얗게 머리가 센 수령 120년의 늙은 벚나무는 유연한 가지를 해자에 닿을 듯 휘청거리고, 굽이굽이 생애를 돌아보던 노인들은 단정하게 앉아 순백의 축제를 즐긴다.

히로사키 벚꽃축제의 백미는 해진 이후 색색의 조명이 밤을 밝히면서 펼쳐진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더욱 하얗게 번지는 벚꽃 풍경을 즐기기 위해 성안을 떠나지 않고 조용히 석양을 기다리곤 한다. 해자 위로 길었던 해가 그림자를 떨어뜨리면 한 잎 두 잎 히로사키의 벚나무들도 꽃잎을 수면에 담근다. 그 위로 수면을 긋는 소형보트의 궤적. 그 뒤를 따라 벚꽃이 점점이 진다.

■ 주니코 트레킹/ 너도밤나무 숲속 33호수… 초록의 향연

형광등에서 뿜어져 나온 듯 환한 빛이 연상되는 벚꽃축제만이 아오모리 매력의 전부가 아니다. 아오모리현 서부 해안에서 가까운 세계자연유산 시라카미(白神) 산지의 주니코(十二湖)에선 초록물감을 뿌려놓은 듯 짙푸른 숲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동심 속 원시림을 닮은 너도밤나무숲, 그리고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 의 주인공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푹신한 이끼들과 30여개의 호수가 어우러진 주니코에서의 산행은 초여름을 맞아 서늘한 산림욕이 그리운 관광객에게 그만인 곳이다.

신록이 지난 겨울이 만들어 놓은 설경을 압도하는 5월초. 주니코를 찾기 위해 아오모리현의 이웃인 아키타(秋田)현 아키타역에서 고노선(五能線) 열차 ‘부나호’에 올랐다. 아키타역과 아오모리역을 잇는 147km 길이의 고노선은 바다의 절경을 한 눈에 담으며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관광코스다. 해안선 기차여행에 걸맞게 큼직한 관광창과 전망라운지를 갖춘 고노선 열차는 일본 전역에서 으뜸가는 낙조풍경을 선사한다.

아키타역을 떠난 지 2시간여가 지나 시골 간이역의 정감이 넘치는 주니코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서 주니코 하이킹 코스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오쿠주니코ㆍ奧十二湖 행이라 써있음)에 오르면 15분 안에 주니코의 입구에 다다른다.

너도밤나무숲이 울창한 주니코(十二湖) 지역에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트레킹을 하며 원시림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호수들을 만날 수 있다. 명칭만 보면 호수의 개수는 12개에 불과하지만 실제론 33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주니코 지역 하이킹 코스에 모습을 숨기고 있다.

주니코 하이킹 코스 중 최고는 500m에 이르는 너도밤나무 숲길을 포함한 약 2km의 구간이다. 이곳에선 푸른 잉크를 풀어 놓은 듯 짙푸른 색을 띤 아오이케(靑池), 멀리서 보면 닭의 머리를 닮은 케도바이케(鷄頭場池) 등의 호수들이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름 모를 들꽃들과 등산객의 발길이 닿지 않아 쑥쑥 자라난 고사리 군락이 고생대의 숲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이국적이다. 한낮의 태양을 까맣게 가려버리는 너도밤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맛있는 개울물은 우리 주변의 자연을 보듯 친근하기 짝이 없다.

주니코 관광 후 숙박은 시내 호텔보다 종합관광안내소가 있는 아오네 시라카미주니코 통나무집을 이용하는 게 좋다. 온천욕과 저녁, 아침밥을 포함해 1인 당 1만엔 정도의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주니코=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여행수첩

인천공항에서 아오모리 공항까지는 2시간 남짓. 서울~도쿄 구간보다 불과 30여분만 더 가면 닿을 수 있다. 대한항공이 월, 수, 금, 일요일 주 4회 정기편을 운항한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주요 현인 아오모리는 북위 41도로 위치상 베이징, 뉴욕 등과 위도가 비슷하다. 사계절 평균기온이 10.1도로 전반적으로 서늘하며 눈이 많이(연 강설량 1,043cm) 내려 스키어들에게 사랑을 받는 지역이다.

벚꽃이 지는 초여름이 되면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는 사과꽃으로 뒤덮인다. 여름이 오면 일본 고전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초대형 등을 만들어 거리를 행진하는 네푸타(武多)축제가 아오모리 전역을 밝힌다. 이 가운데 고쇼가와라(五所川原)시 다치네푸타(立武多)가 가장 유명한데 무려 22m에 달하는 등들이 등장한다.

아오모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온천 관광지들이다. 일본에서 네번째로 온천이 많은 현인 아오모리는 용출량에 있어서도 으뜸 가는 온천의 도시이다. 이 가운데 구로이시(黑石)시 인근의 아오니(靑荷)온천은 일본에서도 '호롱불 여관'으로 유명할 정도로 문명과 단절된 독특한 환경 덕분에 언제나 손님이 넘친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산간 오지의 이 온천은 일부러 객실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고, 대신 램프로 불을 밝히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북도호구3현 훗카이도 서울사무소 www.beautifuljapan.or.kr (02)771-6191,2

히로사키(일본)=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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