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눈길을 끈 건 성명서 문구 변화였다. 그간의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는 표현에서 '당분간'이라는 세 글자를 없앤 것. 경기 상황에 대해서도 '회복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라는 표현이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분명, 시장을 향해 출구(금리 인상)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채권금리가 급등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금통위 회의에 참석했던(열석발언권)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다른 시그널을 줬다. 당일 밤과 다음날인 13일 오전 잇따라 TV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당분간 현재의 거시정책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당분간' 세 글자를 다시 되살린 것. 경기에 대해서도 "민간 부문 경기 회복세가 서서히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얼마나 확고한 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뭐가 문제냐"며 태연한 표정이다. 어차피 금리 결정은 금통위에서 할 것이고, 정부도 여러 경제주체들 중 하나로서 얼마든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이 말이 백 번 옳다 쳐도, 정부가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정부의 영향력에 대한 과소평가다.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의 입김이 여전히 금리 결정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열석발언권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금통위원들에게 압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정부가 단순히 여러 경제주체 중 하나일 수만은 없는 이유다.
통화정책이 오직 최종적인 금리 결정만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꼭 금리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시그널을 주는 것도 중요한 통화정책의 하나다. 한은이 어떤 시그널을 주든 상관없이 대외적으로 정부 할 말을 하겠다는 건, 그래서 시장에 혼선을 초래하는 건, 금통위 통화정책 권한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