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이 과도하게 많은 '고위험 가구'의 경우 대출금리 상승보다는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충격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단기 대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현재의 주택담보대출 시장 구조를 바꾸지 않을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현정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12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주최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의 가계대출' 심포지엄에서 대출금리와 부동산 가격 변화에 따른 국내 가계의 상환능력 변화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 가격 하락의 충격이 훨씬 큰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부동산 가격 대비 대출액 비율'(LTV)이 50%를 넘거나 '총소득에서 대출이자가 차지하는 비중'(DSR)이 40%를 넘을 경우 부채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고위험 가구로 평가했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고위험 가구의 증가 폭이 금리 인상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김 실장에 따르면 2008년 현재 LTV가 50%를 넘는 고위험 가구는 14.9% 였는데, 부동산 가격이 10% 하락할 경우 그 비율이 19%로 늘어나고 20% 하락하면 22.6%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DSR이 40%를 넘는 가구는 2008년 전체의 5.7%였는데, 대출금리(2008년 당시 6.2%)가 30% 가량(2% 포인트) 상승하더라도 그 비중은 8.9%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절대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주택가격의 10% 변화에 따른 파괴력이 금리의 30% 변동에 따른 파괴력보다 큰 셈이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고소득층 중심으로 실물자산 의존도가 높으면서 상당한 부채를 보유하고 있어, 부동산가격 하락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며 "지난해말 현재 주택대출의 40% 이상이 만기 일시 상환방식이어서 부채상환이 본격화하면 가계의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에 몰려 있는 대출만기 구조를 중장기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은 대부분 만기가 10년 이하인데, 그마저도 이자만 내다가 한꺼번에 원금을 상환하는 구조여서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디. 외부 충격에 따라 은행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상환을 요구할 경우 '대출자 파산→주택 강매 처분→집값 폭락'의 악순환에 따라 경제 전반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15년 이상 장기에 걸쳐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는 방향으로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전환해야 하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전국으로 확대해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가계 부채 위험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서근우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가계 부채의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감독기관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다"며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금융회사의 영업행위를 철저히 감독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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