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사고가 잘 나가던 정치지도자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리 불의의 사고라도 원인 공방과 뒤처리 과정에서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남동부 연안을 덮쳤던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대표적이다. 최대 피해지역인 뉴올리언스를 뒤늦게 방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재해 복구를 지휘해온 마이클 브라운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을 "탁월하게 일을 해냈다"고 추켜 세웠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늑장 대응으로 일관해 퇴진 여론이 높았던 사람을 뜬금없이 칭찬했으니 민심이 돌아서지 않을 리 없다.
■ 올해 초 아이티를 흔들었던 강진의 후폭풍은 아이티 정국까지 뒤흔들고 있다. 현 정권은 지진 대응 과정에서 행정 및 치안력의 부재를 드러내 정치적 위기를 자초했다. 정부의 무능에 실망한 일부 국민들이 2004년 무장봉기로 쫓겨난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의 귀환을 촉구했을 정도다. 결국 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재집권을 시도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혀야 했다. 작년 9월 태풍 모라꼿에 늑장 대응한 대만의 마잉주 총통도 민심을 잃어 2012년 연임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그의 지지율은 20%대까지 추락했다.
■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태가 확산되면서 미국 보수 세력이 '오바마의 카트리나'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관리 소홀로 대규모 환경재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부시 행정부에서 이어져 온 공직사회의 모럴해저드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FEMA 공무원들이 석유업계 관계자들과 유착해 감독의 손을 놓았으며, 광물관리청(MMS)도 세밀한 환경영향평가나 안전장치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석유 시추를 허가했다는 것이다.
■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FEMA는 신속한 재난 대응으로 국민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런 기관을 불구로 만든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내각급 독립기관을 국토안보부에 흡수시킨 뒤 예산과 인원을 대폭 삭감했다. 재난 분야의 문외한인 친구를 청장에 임명하는 등 정실인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크루그먼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재난 대응 업무를 정상화하고 공직사회의 모럴해저드를 개선할 책임까지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도 좌파 타령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책 실패를 무조건 좌파정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권을 장악한 세력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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