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동검 등의 유물로 상징되는 청동기시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7월 4일까지 여는 '청동기시대 마을풍경' 특별전이다.
청동기시대는 벼농사의 발달로 농경사회가 시작됐다. 이 시대의 마을에는 주거지뿐 아니라 논, 밭, 광장, 망루, 고상창고(高床倉庫ㆍ땅의 습기를 피해 바닥을 높인 창고), 저장구덩이, 의례공간, 무덤 등 집단생활에 필요한 여러 시설이 있었고, 마을을 둘러싼 나무울타리와 도랑도 있었다. 물론 마을을 대표하고 이끄는 지배자도 있었다.
이번 전시는 최근까지 전국에서 출토된 200여 점의 청동기시대 유물과 함께 이 시대의 마을을 재현, 당시 사람들의 실생활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전시는 '농경의 발달' '도구의 발달' '마을의 발달' '의례' '갈등과 통합'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됐다.
1990년대 이후 울산 검단리 유적에서 발견된 도랑을 두른 마을터, 진주 태평리 유적에서 발견된 요즘과 비슷한 모양의 밭, 울산 옥현 유적의 논 등 여러 유적을 통해 청동기시대의 농경자료가 수집됐다. '농경의 발달' 코너에서는 이런 유적들을 토대로 당시의 논을 실제 크기로 재현해 놓은 모형과 탄화미(炭化米), 농경도구를 선보이고 있다.
'도구의 발달'에서는 실제 남아있는 청동기시대의 목제 도끼자루를 비롯해 이 시대에 완비되는 목공구(木工具) 세트, 절굿공이, 시루 등을 볼 수 있다. '마을의 발달'에서는 늘어난 식량을 저장했던 고상창고를 복원해 보여주고, 대규모 주거지와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도 영상물과 패널을 통해 소개한다.
'의례' 코너에서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밭을 가는 모습이 그려진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다. 이 유물 뒷부분에는 머리채가 긴 사람이 두 손으로 따비(땅을 갈 때 쓰는 쟁기보다 작고 보습이 좁은 농기구)를 잡고 한 발로 힘있게 따비를 밟고 있는 모습이 양각돼 있다. 생김새와 무늬로 보아 주술적 의기(儀器)로 추정된다. 이밖에 무덤에 부장됐던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 암각화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과 농경, 장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갈등과 통합' 코너에서는 지배자를 상징하는 도구로 여수 월내동 출토 청동검(靑銅劍)과 석검(石劍)을 전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특별전과 연계해 6월 12일에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쟁점'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도 연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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