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015년쯤 평택으로 옮기기로 한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시작된 것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다. 용산을 자주의 상징으로 만든다는 야심 찬 사업이었는데, 1조2,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은 국제적 관행인 원인제공자 부담원칙에 따라 우리가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전 비용을 면밀히 따져본 결과, 4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자 재정상 형편을 들어 93년에 일방적으로 백지화했다.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유예 득실 신중히 따져봐야
흐지부지됐던 이 계획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10조원대로 불어난 이전 비용 상당 부분을 떠안을 것을 감수하면서 이를 공론화했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해외주둔 미군기지 재배치계획을 세워놓고 용산기지 이전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공연히 서두르는 바람에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용산기지 이전 과정을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전작권 환수 유예론이 꼭 이런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가정 하에, 우리의 안보능력이 미흡한 현실인식에 기인한 전작권 유예론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 주장이 가져올 부작용과 파장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성마른 외침만 쏟아내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전작권을 유예하면 미국에 지불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이 얼마나 될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전작권 반환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냉전시기 대규모 고정군 체제를 탈냉전기에 맞춰 소규모 기동군 체제로 전환하려는 자국의 군사전략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전략을 수정함으로써 빚어지는 혼란과 비용의 상당 부분을 우리에게 전가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경우 지금도 매년 8,000억원의 방위비가 미군에 들어가는 것을 포함하면 그 비용은 수조원대에 달할 수도 있다. 용산기지와 미 2사단 등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비용 분담을 놓고 진행 중인 협상에서 비용을 더 부담토록 요구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일각에서는 전작권 환수 준비에 소요되는 재원이나 전작권 유예로 안게 될 부담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남의 주머니에 그냥 퍼주는 돈과 우리 국방태세 강화를 위한 전력증강 비용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이 전작권 유예와 연계해서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를 요구할 경우 동북아안보전략도 기로에 서게 된다. 한미동맹은 강화되겠지만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을 불과 2년 앞두고 합의 내용을 번복하는 것은 국제적 위신과 군의 사기 문제와도 직결된다. 지난해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기존 합의를 지켜나가기로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환수 준비는 제대로 해 왔나
전작권 유예 시의 득실은 차치하고라도 정작 정부는 2006년 전작권 전환이 합의된 이후 무엇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전작권 환수를 전제로 2020년까지 매년 국방예산을 9.9% 늘리기로 한 '국방개혁 2020'안은 현 정부 들어 7%대로 대폭 축소됐다. 차기잠수함과 호위함, 고고도무인정찰기, 공중급유기 등 각종 첨단장비 도입이 백지화하거나 늦춰졌다. 지난해 국방예산을 둘러싼 싸움에서 대통령이 국방장관과 하극상을 벌인 국방차관의 손을 들어줘 국방예산이 원안보다 3.8% 삭감됐던 기억도 생생하다.
전작권 반환 문제는 목소리만 높여서 될 일이 아니다. 미국이 "반환 일정에 변동이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까닭이 뭔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 간에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은 치밀하고도 신중한 전략과 인내가 요구된다. 안보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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