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화여대는 국가 브랜드, 글로벌 여성 리더 배출이 목표죠"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이었다. 여성 최초였다. 교육계에선 이 총장의 리더십에 반신반의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대교협의 위상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지에 대한 물음표였으나, 기우(杞憂)였다.
이 총장은 부드러움과 섬세함의 리더십으로 정부와 대학 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는 이화여대를 가리켜 "대한민국의 중요한 브랜드"라고 규정했다. 갈수록 여성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대에 세계 여자 대학 중 최대 규모인 이화여대의 존재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총장은 "한국을 뛰어넘어 글로벌 여성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인터뷰=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_최근 각 대학의 등록금 현황이 공개됐습니다. 최고 수준이었던 이화여대가 올해엔 다소 떨어졌어요.
"등록금 순위가 내려간 이유는 지난해와 올해 등록금을 동결했기 때문이에요. 종합대학 중 예술대가 있는 곳은 투자를 많이 해야 해 등록금도 높기 마련입니다. 특히 여대의 경우 환경과 시설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탓에 비용이 많이 드는 측면이 있어요."
_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얘긴가요.
"남녀공학과 여대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여대는 환경, 미화, 안전시설 등에서 배려해야할 부분이 많아요. 이런 시설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데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지요."
_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외국에 비해 어떤가요.
"다른 나라 대학들 못지않게 비싼것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직접적인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가령 유럽의 대학들은 국가 지원이 이뤄져 학비가 없어요. 국가별로 특성이 있어 어느 곳이 싸고 비싼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려워요."
_그렇지만 학부모들의 등록금 부담이 커지는 것은 맞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게 여기고 있어요. 다만 유념할 부분은 등록금을 내는 학생 및 학부모와 대학이 부담을 공유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를 믿고 협력해야 하고, 대학은 이들에게 신뢰를 주면서 등록금을 지나치게 올리는 일이 없어야 해요. 기본적으로 교육 투자 여건 등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총장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게 등록금 책정일 겁니다."
_등록금을 인하할 계획은 있는지요.
"고려해본적이 없어요. 지난해 사립대 총장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어요. 그러자 많은 대학들이 동참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에요. 등록금을 2년 연속 동결하는 것은 재정적 어려움을 가져오지만 학생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등록금 동결과 함께 장학금도 확대했어요. 또 등록금 옴부즈만 제도를 시행해 어려운 학생들의 처지를 긴급수용하는 조치도 취했습니다."
이화여대 재학생의 장학금 수혜률은 20% 수준이다. 이 총장은 "장학금 액수가 똑같진 않지만 성격은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_등록금 옴부즈만 제도란 어떤건가요.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 두는 학생을 등록금 옴부즈만 제도가 해결하고있어요. 이번 학기에는 등록금을 낼 수 없다고 긴급지원요청을 한 학생들을 도와줬지요."
_그런 학생들이 숫적으로 많은 가요.
"올 1학기에만 123명이나 됐어요. 작년 한해에 혜택을 받은 학생은 171명입니다. 총 300여명 되는 셈이지요. 이들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했어요. 교수들과 전직 교수 등이 학생들의 처지를 살펴 도와주는 방식을 취했어요. 물론 학교가 지원하기도 하지만 동문들과 연계해 도와주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이화여대는 동문이 많아 등록금 옴부즈만 제도 활성화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_대교협 회장때 등록금상한제를 반대하셨지요.
"일률적으로 (등록금을)제재하는 것은 대학의 다양화 및 특성화 추세에 맞지 않아요. 정부가 사립대에 지원하는 부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등록금상한제는 부담을 가중시킬 뿐이지요. 학업 환경 개선을 지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등록금상한제에 앞서 국가의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고 봐요. 대다수의 총장들도 등록금상한제가 대학의 자율적 운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_정부가 사립대에 재정지원을 한다면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일까요.
"일본은 초창기만해도 대학 전체 재정의 16%대 수준이었어요. 물론 여기엔 연구개발(R&D) 지원비도 포함돼 있어요. 하嗤?R&D는 제외하고 순수 경상비 지원이 바람직해요. (정부가)대학 수익사업을 막고 등록금 인상도 막아 놓으면 건실한 운영은 불가능해요."
_등록금 문제는 대학 적립금과 맞물려 있지 않나요.
"적립금은 등록금을 쌓아둔 게 아닙니다. 기금모금을 통해 모아놓은 것이고 대부분 용도가 정해져 있어요. 이걸 다른 곳에 사용할수 없는 내부 사정이 있어요. 이화여대만 해도 총장실이 있는 본부 건물의 수리비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부금이 들어와있어요. 이를 다른 곳에 유용할수는 없어요. 쓸데없이 적립금을 쌓아놓으면 안되겠지만, 중장기적 안목에서는 기금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어요."
_적립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때 기부자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인가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약정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건물을 지울 때 룸에 (기부자의)이름을 붙여달라고 요구하는것처럼 대부분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요. 이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 총장은 "'적립금'이란 용어에 오해가 많다"고 했다. "적립금은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등록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적립금을 다 써버리면 대학을 끌고 갈 자금은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_여대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는 개교한지 124년이 된 세계 최대 규모의 여대입니다. 세계에 가장 알려진 여대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중요한 브랜드이지요. 갈수록 여성의 역할이 부각되는 시대 아닌가요. 남성들의 고유 영역에 여성들이 들어서고 있어요. 이런 영역은 여성에게만 있는 장점이 십분활용되는 측면이 강해요.
물론 여성들에겐 더 많은 책임감이 요구되고있어요. 여성도 리더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해요. 이렇게하기위해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여대 아닐까요."
_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입학사정관제의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습니다.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란 지적이 있습니다.
"(대교협 회장 시절에)입학사정관제를 대입 자율화의 청신호로 봤어요. 이 시대의 고민 중 하나가 공교육 정상화입니다. 입학사정관제 취지가 바로 이 부분과 일맥상통해요.
점수 1~2점에 집착하지 않고 비교과적인 품성, 인격, 인성, 문화적 소양 등을 판단해 학생을 뽑자는 것이 입학사정관제 취지에요. 잠재력을 가진 많은 학생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들어왔어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학생과 소외 계층 학생들도 많이 입학했어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일부 대학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_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요.
"파행 운영을 하는 대학들은 제재를 받거나 지원 중단 등 불이익을 받을 겁니다. 문제도 발견되고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보다 원래 취지에 맞는 좋은 사례들이 훨씬 많다고 봐요.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원래 취지를 살려가는 것이 옳아요. 중요한 것은 아직은 초기단계라는 사실입니다.
정부도 논술가이드라인처럼 획일적 지침을 주기보다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확보하면서 대학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학 총장들이 정부 정책에 대놓고 쓴소리를 하기는 어려운 법. "대학 총장들이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 '노(No)'를 외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는 질문을 던졌다. 이 총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정부 지원금 때문에 불필요한 입학사정관제를 마지못해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필요가 없다면 대교협에서 먼저 항의를 했을 거에요. (대교협이)정부에 끌려간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요."
_우리나라 대학의 국제경쟁력은 어느 정도라고 여기는지요.
"국내 유수의 대학 총장들과 대화를 하면 인성교육, 글로벌 융화 교육을 특히 강조하는 걸 느껴요. 대개 (지향점은)비슷해요. 한국의 대학들은 저력이 있어요. 지적인 지향성이 특히 높다고 생각해요. 수준이 올라갔다는 얘기지요. 사회의 모든 기반이 교육 지식에서 파생된다고 봐요. 우리 대학들이 나름대로 가지는 비전과 아이디어가 뒷받침된다면 세계적인 대학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많다고 여기고 있어요."
_기업은 대학 교육에 불만이 많지 않나요.
"대교협 차원에서 기업과 대학의 연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많이 숙의하고 있어요. 대학도 할말이 많아요. 대학 입장에선 기업이 인재를 데려가려고만 하지 말고 대학 깊숙이 들어와 인적 자원에 투자하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대학 본연의 역할은 기능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인성적인 측면도 중요해요. 기업도 인성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도록 대학과 상호 협력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한때 이화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문제가 핫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이슈가 여전히 진행형인지 궁금했다. 이 총장의 답변은 단호했다. "완전한 양성평등이 이뤄지기 전까지 여대의 역할을 계속 강조될 겁니다. 여성이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예비프로그램을 갖춘 남녀공학 대학은 없어요" 이화여대는 이화여대로 영원히 남아야 한다는 흔들림없는 소신이었다.
정리=박철현기자 karam@hk.co.kr
인터뷰=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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