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 과정에서 중국 외교부는 "어떤 국가 지도자의 방문을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의 내부 문제이며 주권의 범위에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의 방중을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내정간섭'이자 '주권침해'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단도직입적이고 위압적으로 들리지만 말인즉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천안함 사태에 따른 국내 정치적 이유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허용에 대해 중국측에 필요이상의 과도한'항의'제스처를 보인 뒤여서 중국의 '발끈'은 더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조금만 되짚어 보면 중국의 '주권', '내정'주장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티베트, 신장위구르 등 중국 내 소수 민족의 인권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 어떤 나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거슬러 올라가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사태 때의 참담한 유혈 진압도 중국의 '내정'일 뿐이다. 하물며 언론ㆍ종교의 자유 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백악관에서 만나는 것은 미국의 주권사항인 것 같은데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주권침해로 여겨 노발대발한다. 우리와 직접 관련된 중국 내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은 중국 국내법에 따라 이뤄지는'합법적'인 일이다.
과거에 아마도 중국이 '주권', '내정'을 얘기할 때 수세적, 방어적으로 느껴지던 어느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주권의 개념도 결국 상대적이어서 국력이 충분치 못한 나라의 주권 주장은 외세에 대한 '저항의 논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어떤가. 누가 감히 중국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 강대해진 중국과 잘 지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게 현실이고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주권을 얘기하면 거기엔 자연히 '힘의 논리'가 배어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국제사회 역학관계의 엄혹함은 그 '힘의 논리'를 당연시한다. 대가를 치를 각오 없이 감히 누가 중국의 주권에 맞설 수 있겠는가.
중국을 비난하며 대립을 조장하거나 우리의 처지에 대한 자조적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문제를 냉정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풀어나가려 해도 우리의 주권과 중국의 주권이 맞부딪치는 지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직 명백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지만 천안함 사태는 우리에겐 매우 중차대한 주권적 상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도발세력에 의한 주권의 폭력적 침탈에 맞서 일각에서 무력응징까지 운위되고 있는 때에 예비ㆍ잠정적 단계로서 주변국에 "기다려 달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주권은 보존되기 어렵다. 북한 핵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의 주권적 접근방식은 우리에게 무력감을 안겨 줄 때가 많다. 북한체제의 유지와 안정을 우선시하는 중국의 자세는 북한 핵무기 제거 여부에 존립기반이 달려 있는 우리의 주권적 요구를 2순위로 밀어낸다.
헌법에 따르면 우리의 주권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 미치는 것으로 돼있다. 이미 사문화됐다지만 이 조항은 그래도 최소한 남북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우리 주권의 실천적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반도 현상유지를 원하는 중국은 반통일세력인가, 아닌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북한이나 중국의 자유민주화를 우리는 거론해서는 안 되는가. 중국의 주권 발언에 대해 이처럼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한국인으로서는 불가피하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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