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조선의 당쟁을 붕당정치(朋黨政治)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당쟁'(黨爭)이라는 말은 일제학자들이 쓴 것이기 때문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물론 근대사학(近代史學)이 일제학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어 모든 용어가 일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 일인들이 만든 모든 용어를 버리고 새로 만들어 쓸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당쟁이란 당파끼리 서로 싸우는 것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창(李建昌)의 (黨議通略)에 나오는 '붕당지쟁'(朋黨之爭)의 준말일 뿐이다. 그런데 '붕당정치'라고 하면 마치 식민통치를 극복하고, 당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사고라면 일인들이 만든 국어 영어 물리 수학 같은 일반 명사들도 다 쓰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광복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는 일제 식민사학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사를 긍정적으로 서술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붕당정치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이것은 일제의 한국사 왜곡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왜곡일 뿐이다. 역사는 사실대로 서술하는 것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붕당정치'라고 한다고 당쟁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붕'(朋)은 '동사왈붕'(同師曰朋), '동도왈붕'(同道曰朋)으로 같은 선생 밑에서 같은 도를 배운 동창생이라는 뜻이니 나쁠 것 없다. 그러나 '당'(黨)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끌어들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배격하는 '편당'(偏黨)일 뿐이다. 그러니 '붕당'이란 성리학(性理學)을 신봉하는 같은 학통 사람들이 구성하는 당파이다.
조선왕조는 왕권국가였다. 따라서 모든 권력은 의제적(擬制的)으로 국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양반관료간의 권력투쟁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러므로 국왕 앞에서 붕당을 지을 수 없었다. 대명률(大明律) 간당조(奸黨條)에는 "만약 조정의 관원들이 붕당을 지어 국가의 정치를 문란하게 한다면 모두 목을 베어 죽이고, 처자는 노비로 삼으며, 재산은 관청에서 몰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조선은 대명률을 준용했다.
그러니 붕당을 지으면 살아남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림이 정권을 잡자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정국이 되어 법제적으로 금지된 붕당이 실제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군자당과 소인당을 구별하더니 뒤에는 각 당에서 군자만 뽑아 쓰는 조제론(調劑論)이 유행했다. 그리하여 붕당간의 당쟁이 일어났다.
이로 미루어 보아 붕당정치는 당쟁으로 그냥 쓰거나 정치주체가 사림이니 사림정치로 불러야 마땅하다. 붕당은 실재하기는 했으나 국법으로 금지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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