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지식인 100명씩 200명이 어제 서울과 도쿄에서 한일 병합조약이 원천 무효임을 선언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1910년 체결된 이 조약이 모든 조선 사람들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부정(不義不正)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의 확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낮춰볼 게 아니다. 양국 지식인 사회가 한 목소리로 미래 지향을 위한 과거사 청산 방향을 제시한 상징성이 크다. 무엇보다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은 끊임없이 지적하면서도 그 출발점인 병합조약의 정당성에는 좀처럼 의문을 표하지 않았던 일본 지식사회 일각에서 한국 지식인의 요구에 호응했다는 데서 의미가 산다. 성명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해온 5개월간의 토론과 절충 자체도 의미가 깊다.
일본 지식사회의 다양성을 생각할 때 공동선언의 의미를 확대 해석할 이유는 없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 한국 학계에서는 당시의 객관적 정세로 보아 식민지화 자체는 불가피했다는 식의 인식을 드러내기 어려운 반면 일본 지식사회에는 식민지 지배는 물론 독도 영유권 문제에서도 한국측 주장을 옹호하려는 국제주의자들이 적지 않다. 다만 그들이 일본 지식사회의 비주류인 데다 일본 정부의 입장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역사교육이나 과거사 청산 등 실효성 있는 행동의 변화까지 기약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이번 공동선언이 자칫 한국 내 민족주의 사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만 아니었으면 조선사회가 정상적 역사발전 과정을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는 식의 인식은 일제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시각 못지않게 역사 사실과 거리가 있다.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부당성과 구한말 조선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떼어서, 그리고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양국 정부는 과거의 어둠을 지우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지혜를 모아 왔으나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양국 지식인 사회의 부분적 의견 접근이 역사 재정리와 청산 분위기를 다양한 분야와 계층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