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시인 마종기(71)씨가 열두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발행)을 펴냈다. 시집 (2006) 출간 이후 4년 만이다.
27세 때인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온 그는 2002년 의사에서 은퇴한 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이국의 병원에서 보내는 힘들고 숨막히는 생활 속에 시 쓰기는 철학적 수사가 아닌 생존의 차원에서의 구원이었다"고 회고하는 그의 시는 의사 체험에서 비롯된 삶에 대한 통찰, 조국에 대한 그리움 등을 따뜻한 서정과 순연한 모국어로 표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평생 마음에 품고 시로 육화해왔던 짙은 향수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시 '북해의 억새'에서 그는 유럽 북해에서 황홀하게 바라봤던 은빛 억새꽃이 전남 순천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음을, 심지어 억새를 흔드는 바람소리마저 서로 닮았음을 깨닫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내려놓는다. '나는 이제 아무 데나 엎드려 잠들 수 있다./ 하루 종일 자유롭게 길 떠나는 씨를 안은 꽃,/ 꽃이라 부르기엔 눈치 보이던, 북해의/ 외딴 억새도 고향의 화사한 피의 형제라니!/ 저녁이면 음정이 같은 메아리가 된다니!'
마씨는 "예전엔 고국을 떠난 삶의 고단함,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해야만 하는 상처를 시로 노래했는데,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비록 몸은 이국에 있지만 내 정신이 고국에서 살고 있으니 나는 이미 귀환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행시에서도 이같은 시인의 회심(回心)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살아온 길과 물을 모두 모으면/ 사무치게 오래된 흐린 항구가 되느니/ 가난한 마을 작은 집의 나이 든 아내를 보면/ 그 긴 여행을 어찌 젖은 과거라고만 부르리.'('노르웨이 폭포'에서)
그래도 고국 땅만큼 시인의 감각을 들깨우는 곳이 또 있으랴. 난생 처음 가본 연신내 시장통에서 비 내리는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삶에 대한 회한을 토로하는 시 '연신내 유혹'은 이번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절창이다. '평생 얼굴 들기가 힘이 들었어./ 피 토하며 시를 쓰지 못해 미안해./ 고집도 줏대도 없이 글을 쓴다며/ 눈치 보며 비켜 다니며 살았지.'
그러나 그 회한은 건강하여 노시인이 앞으로 부를 노래를 다시금 기대하게 만든다. '연신내에 와서야 드디어 시인이 되었다./…/ 쓰고 싶은 글, 허름한 목청만 좋아하는/ 구수한 맛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평범한 것은 대개 친절하고 따뜻해,/ 무리수 없이 감칠맛 나는 정성일 뿐이야.'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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