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휴일인 9일 재정전략회의를 개최한 건, 정부가 나라 재정 문제를 결코 가벼이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남유럽 사태가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화약고가 되고 있는 현 상황의 긴박함도 어느 정도는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브리핑에서 그리스 사례를 들며 "저출산ㆍ고령화, 통일비용 등 중장기적 재정위험 고려시 외부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위기 발생 이전에 재정 건전성을 조기에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 정부의 방점은 재정 건전화에만 찍혀 있지는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는 건전재정을 이루면서도 고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비용을 절감하는 식으로만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다 보면 수입이 줄어 오히려 재정의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전 재정'과 '고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인데, 결국엔 현 정부 초기 감세정책을 추진할 때의 '성장 선순환'효과를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자칫 재정 건전성 우려가 'MB노믹스'의 근간이랄 수 있는 성장 잠재력을 훼손해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세우고 있는 것이 저탄소 녹색성장. 정부 관계자는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빨리 위기에서 극복한 지금 녹색성장 등 신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등 과감한 투자도 병행해야 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일률적 지출 축소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 대비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지출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복지나 연구ㆍ개발(R&D) 분야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복지 지출은 시혜적 지출에서 벗어나 일자리 제공을 통한 생산적 복지 시스템을 구축해 보완하고, R&D 투자는 나눠먹기 등 낭비 요소를 근원적으로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재정준칙을 법제화하자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서는 경직적 재정운영을 이유로 추후 검토사항으로 미뤄놨다.
이날 회의에서 전문가들의 주문도 쏟아졌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그리스 사태를 볼 때 앞으로 경제정책 초점은 재정 건전성에 맞춰야 한다"고 했고,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는 "향후 지출 소요가 많은 복지 분야의 전달체계를 점검하고, R&D는 철저한 사전ㆍ사후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논의 내용을 토대로 2010~14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과 내년 예산안 편성에 반영할 예정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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