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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쿠바식으로 산다' 쿠바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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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쿠바식으로 산다' 쿠바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입력
2010.05.0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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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루이스 테일러 지음ㆍ정진상 옮김 / 삼천리 발행ㆍ336쪽ㆍ1만6,000원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2007)에 등장하는 두 가지 병원 풍경. 한 곳은 손가락 봉합 수술을 원하는 환자에게 7만 2,000달러의 청구서를 들이밀고, 다른 곳은 찾아온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묻고 정성껏 치료해준다. 앞의 것은 미국, 뒤의 것은 쿠바의 병원이다. 풍자와 과장이 섞여 있지만 사실이다. 1950년대풍의 복고 이미지와 경제제재를 먼저 떠오르게 하는 나라 쿠바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에는 이 의문을 푸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 저자는 미국 버팔로대 도시학센터 소장으로 지역공동체를 연구하는 학자다. 이 책은 그가 1999년부터 10년 동안 쿠바 아바나에 머물며 사회 밑바닥을 훑어 분석한 결과물이다. 1959년 혁명 이래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가장 중요한 사회 원칙으로 지켜 온 '쿠바식 삶'의 동력에 대한 해석이 뼈대를 이룬다.

소비에트와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의 잇단 붕괴는 1990년대 쿠바 경제를 궤멸적 상황으로 몰았다. 미국의 제재도 이 시기 한층 강화돼 많은 언론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고 예견했다. 그러나 쿠바식 사회주의는 오늘까지 건재하다. 저자는 현실 사회주의 세계의 붕괴가 쿠바에 있어서 오히려 기회가 됐다고 분석한다.

"이제 쿠바 섬은 에스파냐 식민지도, 미국의 종속국도, 소련의 준위성 국가도 아니었다. 쿠바는 주인이나 상위 권력에게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여러 문제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정치ㆍ경제 모델을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자유였다."

저자는 400건 가까운 심층 인터뷰를 통해 쿠바가 건재한 원인을 추적한다. 그가 찾아낸 것은 '풍부한 사회적 자본을 지닌 고도로 조직화된 이웃공동체, 바리오(Barrio)'였다. "쿠바의 바탕"이라고 일컬어지는 바리오는 단순히 일상과 문화의 공동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 공간적 환경, 사회 조직, 내부 기구, 정부가 서로 상호 작용하는 '촉매 장소'다. 쿠바는 이 공동체의 존재로 인해 경제난의 영향을 막아내고 민중계급의 충성, 인종적 정의 등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책에는 수도 아바나의 노동자 거주지인 산이시드로 지역 30여개 공동체의 사례가 등장한다. 바리오들은 쓰레기장을 정원으로 만들고 모든 연령에게 문화와 역사에 관한 교육을 제공한다. 또 콘서트나 무료 진료를 위한 공간을 자생적으로 건설한다. 바리오가 이처럼 기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부르주아의 연회장을 극장 등으로 바꿔 민중계급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쿠바의 집권세력이 있다.

경제난 기간에도 무상의료 정책을 유지하고 안정된 주거비와 생필품 배급 수준을 지켜냈던 쿠바 정부의 정책도 '쿠바식 삶'의 원동력으로 제시된다. 설탕 수출을 대신해 관광업으로 승부를 건 정책 변화도 조명되는데, 저자는 이를 경제적 성공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소비문화의 도전이라는 새로운 문제의 원인으로 복합적으로 다룬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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