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 히데코 지음ㆍ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발행ㆍ56쪽ㆍ1만1,000원
해묵은 그루터기의 움돋이, 400살 먹은 아카시아 나무, 벽오동 씨앗…. 이런 것들을 수채화로 그렸다. 물을 머금은 채 번진 투명한 그림이 촉촉하고 싱그럽다.
그림책의 무대는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식물원. 에서 책 제본가와 소녀의 교감을 감동적으로 그렸던 일본 작가 이세 히데코가 이번에는 식물학자와 일본인 소녀의 잔잔한 인연을 이야기한다.
소녀의 이름인 사에라는 동음의 프랑스어로 '이곳 저곳'을 뜻한다. 그는 식물원 곳곳에 불쑥 나타나선 작은 말썽들을 피우는데, 30년 넘게 이곳을 지켜온 식물학자는 나무의 유래를 설명하고 해바라기 씨도 나눠주면서 아이가 식물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식물학자는 든든한 멘토, 아이는 식물학자의 일상을 변화시킨 멘티가 된 것이다.
그러나 만남 뒤에는 헤어짐이 있는 법, 소멸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자 두 사람도 이별을 맞는다. 작가는 그들의 끈끈한 정을 직접적인 대화 대신 소녀가 그린 수많은 식물 그림이 나부끼는 식물원 풍경으로 세련되게 표현한다.
책에는 68종의 식물이 살아 숨쉰다. 작가는 감정을 글로 싣는 대신 오로지 이 초록 생명들에 두 사람의 우정을 아로새겼다. 어린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커다란 나무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또는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 않을까.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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