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천재를 기부천사로 이끈 신데렐라
"빌은 서툴고 편향된 사람이었지만, 멜린다가 그를 중심 잡힌 사람으로 만들었다."
2006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향후 20년 간 300억달러의 재산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후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약속한 기부를 계속 이행하는 전제조건으로 '빌과 멜린다 모두 살아서 재단을 운영할 것'을 내세운 버핏은 "멜린다가 없었다면 기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빌 게이츠도 "내가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은 오로지 멜린다 덕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계 최대 갑부 두 명을 '기부 천사' 대열로 이끈 멜린다 게이츠는 누구일까.
갑부 사장과 사내 결혼
멜린다 게이츠는 1964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의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톨릭계 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듀크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ㆍ경제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87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입사, 멀티미디어 제품 개발부에서 일하다가 이듬해 기자 회견장에서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만나 사내 연애를 시작한다. 어마어마한 갑부이면서도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 애인을 위해 멜린다는 커피 값을 대신 계산하곤 했다.
빌이 멜린다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는 버핏이 도움을 주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소유의 보석상인 보셰임에 데리고 가 약혼 반지를 사 주도록 한 것. 빌과 멜린다는 94년 1월1일 하와이의 라나이 섬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세계 최고 갑부의 결혼식에 수많은 파파라치가 몰렸고,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라나이섬의 모든 호텔 방과 헬리콥터를 빌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듬해 멜린다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MS를 퇴사했다. 여기까지는 청년 갑부와 결혼한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진실함과 연민으로 남편을 설득하다
퇴사 후 두 아이를 더 낳은 멜린다 게이츠는 셋째 아이가 돌을 넘긴 2000년 자선사업가로 변신한다.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 맞서 싸우며 '독점 자본가'로 비판 받던 남편을 설득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공동 회장을 맡은 것.
애초 빌 게이츠는 돈 버는 데만 몰두했고 어떻게 돈을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멜린다는 결혼 당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고 조언했던 시어머니의 뜻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남편을 설득했다.
현재까지 게이츠 부부는 재단에 240억달러를 기부했으며, 다른 유명인사들의 기부까지 더해져 이 재단의 자산은 3월말 현재 352억달러에 이른다. 많은 자선재단이 설립 당시 자산은 보존하면서 운용수익으로 기부를 하는 반면, 게이츠 재단은 매년 30억달러 가량의 공격적인 기부를 하고 있으며, 빌과 멜린다 게이츠, 그리고 워런 버핏 중 한 사람이 죽은 후 50년 안에 모든 자산을 기부하기로 미리 정해 둔 상태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AIDS, 말라리아 퇴치와 교육 향상이 목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멜린다 게이츠는 "세상 모든 사람은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 자기실현의 동등한 기회를 막는 장애물이 저개발국에서는 질병, 미국에서는 교육이라고 봤다. 93년 아프리카 여행에서 빈곤국 어린이와 여성들의 참담한 실태를 목격하고, 98년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저개발국의 질병실태에 대한 기사를 읽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멜린다는 특히 자선사업에 대해 단순히 얼마의 돈을 기부해 생활 형편을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자선사업이 "결과를 중시하는 벤처사업"이라고 말하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인 개입"을 할 것을 강조한다. 게이츠 재단이 여러 가지 사업에 골고루 기부하는 대신 몇 가지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이유다.
이같은 철학에 따라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말라리아 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2002년 기준 연간 300만명)를 10만명까지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관련 백신을 접종하고 피임도구를 보급하며 희귀병에 대한 백신 개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자선사업의 주된 재원은 빌이 벌어들인 돈이지만, 확고한 철학을 갖고 이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그의 부인인 멜린다인 셈이다.
다음 주는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으로 세계 최대의 철강제국 '아르셀로 미탈'을 탄생시킨 인도 출신 갑부 락시미 미탈을 소개합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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