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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세대 와인 강사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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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세대 와인 강사 김준철

입력
2010.05.0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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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물에는 소비뇽 블랑을 매치하면 괜찮아요"

벌써 섭씨 20도 언저리까지 기온이 올라가다 보니 차가운 술 한 잔 생각이 절로 인다. 차가운 맥주, 차가운 막걸리, 차가운 청주를 뒤로 하고 오늘따라 아른거리는 술은 와인이다. 60년대 말 출시된 사과와인,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로부터 한식과 궁합이 좋은 와인까지, 와인 강사 1세대 김준철 원장(김준철 와인 스쿨)에게 여쭈었다. "봄날 어울리는 와인은 뭔가요?"

남도출신 와인 선생님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준철 원장은 손맛 좋은 어머니 덕에 어릴 적 맛에 대한 기억이 풍요롭다.

"우리 어머니는 고기보다 채소 맑은 맛을 더 좋아하셨어요. 자식들 먹을 국은 따로 멸치나 고기로 육수를 내서 끓이시고, 당신이 드실 국은 말간 채소 국물이었지요. 저는 이상하게 엄마가 드시는 심심한 국물이 더 맛있었어요."

고기 섭취를 삼가고 자극적인 양념을 즐기지 않았던 모친의 입맛 덕에 미각을 키우고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질문해 보았다. "미각이라는 것을 별나게 타고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보통 입맛에 평범한 감각을 가졌습니다"라고 답하시는 와인 선생님.

고려 대학교 농화학과 재학 당시 술과 된장, 청국장 등을 발효시키는 재미를 익혔다는데. "아직도 흔하게 마시지는 않는 셰리, 포트 이런 주정 강화 와인도 70년대에 알게 되었어요."

한창 젊을 때에는 명동을 돌아다니며 한국 최초의 와인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를 마셨던 기억을 들려준다. 후에 출시된 '위하여'라는 이름의 또 다른 와인과 함께 익어간 김 원장의 와인사랑이 평생 직업으로 이어졌다. 와인과 주스를 제조하는 한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당시, 충남 보령에 위치한 농장에서 원 없이 술을 담그고 주스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당시 초빙되었던 일본인 와인 기술자는 김 원장에게 캘리포니아 유학을 권했고, 회사의 보조로 그는 양조학과가 있는 프레스노 주립대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토양, 비료, 미생물, 생화학에 관련된 과목을 공부하는 한편, 학교의 커리큘럼과 교육시설을 빠짐없이 익혔다.

그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방대한 자료는 92년 퇴사 후 '국제화 시대의 양주 상식'이라는 첫 저서로 정리하게 된다. 이후 김 원장의 와인 관련 서적은 백과사전 분량의 '와인 양조학'까지 총 아홉 권으로 늘어났다.

"이 노트가 제 대학시절 쓰던 것이에요."

강의실 한 쪽의 책장에는 보기만 해도 탐이 나는 선생님만의 와인자료가 빡빡하게 들어있다. 그 가운데 빛이 바랜 노란 공책은 30년도 더 전에 김준철 원장이 직접 적어 내려간 필체며, '셰리와 포트' 혹은 '테이블 와인' 등 당시의 강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IMF 체제 이후 90년대 후반부터 늘어난 와인에 대한 관심은 매년 숫자가 늘어난 와인 학원, 와인 바, 와인 유통 회사 등으로 이어졌고, 김 원장도 학생 다섯 명을 두고 시작한 와인 강의가 2000년도 중반에 이르러 한 반에 40명 이상씩, 몇 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가르쳐야 할 정도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그렇게 김준철 원장에게 와인을 배운 사람들의 숫자가 어느덧 1,500여명이다.

한국식 와인 문화

'한식의 세계화'에 맞물려 관심을 받고 있는 한식과 맛이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에 대해 물었다. "오늘 같은 봄날에는 나물에다가 소비뇽 블랑을 매치하면 괜찮지요"라고 운을 뗀 김 원장은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난 다음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꼭 와인과 한식을 매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필요가 있어요"라고 조언한다.

나부터도 만들어 먹는 음식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고민하지만, 아주 가끔 구운 고기에 레드와인을 곁들이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 김 원장의 말처럼 밥 따로, 와인 따로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다.

"한국 사람들은 와인을 음식과 곁들이는 것 보다 와인 자체의 맛으로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의 보조로서의 와인이 아닌, 오롯이 와인 맛을 보기 위한 시음. 그렇게 와인을 마시는 이들이 늘어간다고 생각하니 한국식 와인 문화가 비교적 세련된 길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한 번 더 세련돼 져야 할 것이 있다면 '허세'를 버리는 노력이다. 명품 좋아하는 이들이 무슨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무슨 브랜드의 신발을 샀다고 자랑하는 방식이 와인에도 적용된다면 그것은 세련된 와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듯 와인 음용이 생활화 된 유럽에서는 아주 특별한 날, 이를테면 혼례라든가 부모님의 기념일 등이 아니면 고급 와인을 마실 일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마트에서 파는 생활형 와인, 시가로 3유로(5,000원 선)에서 10유로(15,000원 선) 이내의 와인을 주로 마신다.

"와인을 이해하려면 역사, 문화, 지리, 생물, 외국어 등의 공부를 할 각오로 오세요." 와인 관련업종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찾아오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주는 김 원장의 조언이다. 과열되었던 와인 거품이 최근 세계적인 불황으로 다소 잠잠해진 지금, 거품이 빠진 와인 업계에서 앞으로 필요한 인재는 와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양한 문화에 정통한 사람들이라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국의 술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

"머루같이 당도나 맛이 와인에 적합한 과일이라면 지역 특산물로 와인을 만들면 좋을 겁니다. 지역마다 와인을 담글 수 있는 과실을 특화시켜 와인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은 와인 산지를 여행하고,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을 마시고 직접 사서 갈 수 있는 특혜를 고루 누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와인기술자들 간의 기술 공유입니다. 와인 양조 기술은 대단한 비기(秘技)가 아닙니다."

해당 청이나 지자체에서 술을 담그는 공정을 표준화시켜 알리고, 그 기술이 해당 지역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발전되는 것이 먼저 이뤄지게 되면,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토양, 물로 인한 맛의 차이가 자연스레 생겨나서 우리 과실주의 수준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식으로 마시는 서양 와인, 한국의 기술로 만드는 우리 와인(과실주)이 다 같이 성장해 있을 어느 날을 이야기하면서 내 오랜 술 선생님은 와인 한 모금을 지긋이 머금었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사진=임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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