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내외의 시선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의 행태는 호들갑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건강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김 위원장이 4년 여 만에 바깥 나들이에 나섰으니 그럴 만도 하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 받고 있는 미묘한 시점의 방중이기 때문에도 그렇다. 김 위원장의 방중으로 한반도 정세는 심하게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천안함 문제와 선후ㆍ병행 고민
겉으로 드러날 북중 정상회담 주요 의제는 경제협력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춘궁기인 점 등을 감안해 대규모 식량지원과 같은 확실한 선물 보따리를 풀 것이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 도착 전 다롄과 텐진을 방문한 것은 중국의 대북투자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자, 나진항 등 연해 개발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북중 경협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합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양 정상간 더 중요하고 긴밀하게 논의될 의제는 6자회담 재개 문제다. 천안함 침몰사건 때문에 한국과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북한에 쏠리고 있기는 하다. 이것이 회담 지연 등 대북 압박으로 이어진다면, 북한으로선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6자회담 재개 선언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조속한 회담 재개에 대한 북중의 선제적, 적극적 의지 표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중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해도, 천안함 문제는 직접 논의되기 어려울 것이다. 김 위원장의 언급 자체가 북한 소행설을 부채질할 뿐만 아니라, 중국도 함부로 거론할 소재가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된다 해도 중국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을 북한에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수준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명확한 물증이 나오지 않는다면, 향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이 한국을 지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리어 중국은 북한을 배려하는 모양새를 취하거나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려 할 수도 있다.
'선 천안함 진상규명, 후 6자회담 재개'를 선언한 한국 정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천안함과 6자회담을 연계한 정부의 입장은 십분 이해가 간다. '국민정서법'으로 봐도 정부의 조치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현실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전개될 조짐이다. 머잖아 '천안함 진상규명, 6자회담 병행' 또는 천안함 진상규명과는 별개로 '조기 6자회담 재개'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6자회담 조기 재개로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현재로서는 한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지만, 북중의 6자회담 재개 목소리에 한 다리를 걸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진상규명과 6자회담 동시 병행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만 천안함과 6자회담 연계전략을 고수하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벌써 김 위원장의 방중을 둘러싸고 한중간에 조성되고 있는 미묘한 긴장은 이 같은 우려의 현실화 가능성을 예견케 한다. 이렇게 될 경우, 북ㆍ미ㆍ중이 6자회담 재개로 분위기를 끌고 가는 가운데, 한국 정부만 고립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한중 간에 외교적 결례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양자택일 딜레마는 경계해야
이 시점에서 천안함 진상규명 문제와 6자회담 재개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창조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본다. 천안함 진상규명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진행하되, 6자회담 조기 재개에 대해 전향적인 행보를 보이는 적극적 발상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천안함 진상규명과 6자회담 재개 중 양자택일로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우선시 해 6자회담 조기 재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우리만 외톨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냉철하면서도 지혜로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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