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 3,000억 달러 고지가 멀지 않았다. 2~3년 전만해도 외환보유액 수위에 대해 "2,000억달러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3,000억달러는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외환당국도 사상 최고치를 돌파한 보유액 규모에 대해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4월말 기준 2,788억7,000만달러)은 올해 들어서만 88억8,000만 달러가 늘어 2,800억달러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경로는 ▦이자수입(운용수익) ▦유로화나 엔화 자산가치 상승에 따른 달러환산수익(평가이익) ▦당국의 시장개입(달러매수개입) 등 크게 세가지. 이 중에서 최근 외환보유액이 급증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원ㆍ달러 환율 급락억제를 위해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한 결과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시장에선 지금 추세로 볼 때 외환보유액이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운용수익이나 평가이익은 차지한다 해도, 국내 외환수급상 경상수지든 외국인주식자금이든 빠져나가는 달러보다는 들어오는 달러가 많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들어오는 달러를 당국이 (시장개입을 통해)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일정 부분은 보유액으로 쌓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유액 수위를 예측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전체적 흐름에 비춰본다면 연내는 힘들어도 내년 초쯤엔 3,000억달러 고지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선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당국이 달러화를 사들이는 만큼 원화가 풀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많은 시중유동성을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 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려면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외환보유액은 미 국채 등 수익률 낮은 안전자산에 주로 투자하기 때문에 통안증권과 비교하면 역마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용에도 불구, 외환보유액은 현재로선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2,000억달러가 넘는 보유액을 갖고 있었지만 전혀 위기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면, 최소 3,000억달러를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이던 시절에 위기설이 제기된 점을 볼 때 외환보유액을 지금보다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박성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가 10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 하더라도 이에 대비한 보험료(역마진)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도 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초만해도 "적정 보유액은 2,100억달러"란 얘기까지 나왔지만, 한차례 위기를 거치면서 3,000억달러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다.
최진주기자 pariscom@k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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