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이라는 독자적인 서양 장르에 국악을 구겨넣고 싶지 않아요. 판소리가 수평적인 선의 음악이라면 화성을 가진 양악은 수직적인 선의 음악이지요. 두 장르가 만나는 점이 분명 있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작곡하는 겁니다."(이자람)
소설가 고 이청준(1939~2008)의 '서편제'를 각색한 뮤지컬이 나온다. 콘서트기획사 피엔피미디어의 첫 뮤지컬이기도 한 이 작품은 연출 이지나씨를 주축으로 대본 조광화, 무대디자인 박동우씨 등 뮤지컬계의 스타 스태프를 대거 기용, 2월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동명 영화에서는 서편제가 남도 길을 흠뻑 적셨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현대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게 제작사의 말이다. 영화에서 고수(북치는 사람)였던 동호가 록밴드 결성을 꿈꾸는 소년으로 바뀐 것이 한 예다.
음악은 더욱 파격적이다. 음악감독은 '애인 있어요' '보고싶다' 등 히트곡을 만든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36)씨와, 어린시절 '예솔이'로 알려졌다 국악인으로 성장한 이자람(31)씨. 신선한 조합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 윤씨의 작업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국적인 소재라고 음악까지 한국적일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편견"이라며 "주된 장르는 팝이고 록, 클래식이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동 음악감독을 맡은 김문정씨의 지휘로 곡들을 만들고 있는데, 윤씨가 전체적인 작곡을 하면 이씨가 국악이 필요한 대목을 작곡해서 끼워 넣는 식이다.
"뮤지컬 '서편제'가 판소리 일색이라면 뮤지컬로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제가 국악만 주장하지 않아서 작곡자로 선택 받은 것 같아요." 뮤지컬이 처음인 이자람씨는 "뮤지컬을 이해하기 위해 '오페라의 유령'처럼 잘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예들을 열심히 들으며 공부 중"이라고 했다. 또 그는 "송화의 득음 장면 등 판소리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정통성을 강조하겠지만 전체가 국악인 넘버는 거의 없다"면서 "대신 '진짜' 판소리를 해야 하는 송화 역은 나를 비롯한 국악 전공자가 맡게 된다"고 귀띔했다.
윤일상씨도 "대본이 굉장히 해학적이다. 그에 맞게 곡마다 국악기가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수 이정현이 부른 노래 '달아 달아' 등 대중음악에 북, 가야금 등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작곡가. 북이 사용된 그의 곡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윤씨는 "기본 판소리 공부는 하고 있지만 형식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국악을 훌륭한 월드뮤직으로 알리고픈 욕심을 가진 지는 오래됐다"고 속내를 비쳤다.
작품은 대사 없이 노래가 극을 이끄는 송스루(song-through)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곡에 한층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두 사람은 "상업성으로 치닫는 뮤지컬 시장에서 반대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를 작품을 맡아 굉장히 흥분된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듀엣으로 음반 하나 내고 싶다"며 호흡을 자랑하는 윤일상씨의 농담처럼, 두 사람의음악도 서로를 흡수하게 될까. 뮤지컬 '서편제'는 8월 14일~11월 7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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