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코뿔소 뿔로 만든 반지고, 저건 물소 뿔로 만든 팔찌예요. 한 번 차보세요."
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 마당에 간이천막 40여 동이 섰다. 동마다 대사관별 자국의 나라 이름이나 외교통상부 국실 명패가 내걸렸고, 주한 대사 부인을 비롯한 대사관 직원 및 외교부 직원 부인들도 정자세로 손님맞이 채비를 마쳤다. 외교통상부 배우자회(이하 배우자회) 주최로 열린'이웃돕기 자선 바자'행사장. 바자가 시작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쏟아져 들어온 손님 수백 명은 먼저 귀한 물건을 차지하려는 듯 분주히 움직였고, 오가는 인사와 흥정 소리로 행사장은 금세 난전처럼 흥성해졌다.
케냐 부스. 20대 한국 여성 2명이 보라색 반지와 빨간색 팔찌 등 평소 보지 못한 장신구에 시선을 뺏긴 채 서 있다. 케냐 대사관 자원봉사자 에버린 남베게라(28ㆍ여)씨가 유창한 한국어로 상품 설명에 여념이 없다. "…, 한국에서 이렇게 싼 물건 보기 힘들걸요?!" 결국 손님의 지갑이 열렸고, 남베게라씨의 입도 지갑만큼 크게 열렸다.
매년 주한 대사관 및 외교부 직원 부인들이 매년 자신들이 수집한 세계 토산품 등을 내놓고 벌이는 이 자선바자가 올해로 22회째. 25개국 주한 대사관이 참가한 이날 행사는 주변 도로가 한 때 혼잡을 빚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케냐 부스는 가장 붐빈 매장 가운데 하나였다. 기린ㆍ사자ㆍ코뿔소 등 동물뿐 아니라 마사이ㆍ키쿠유족 등 부족 형상을 나무나 돌로 조각한 수공예품이 가장 인기였다. 케냐 대사 부인 완가키 느고비씨는 "손으로 일일이 깎아 만든 거예요. 케냐인들은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어 집집마다 한두 개씩은 갖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먹거리로 '재미'를 본 곳도 많았다. 자랑거리인 피자로 유혹에 나선 이탈리아 부스는 준비한 재료가 금세 동나 바자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아야 했고, 말레이시아의 볶음국수인 미훈고랭, 칠레의 와인 등도 불티나게 팔렸다.
영국 명품도자기 브랜드인 로얄 알버트 샐러드볼 6개를 구입한 임창선(61)씨는 "백화점에서 사려면 개당 5만원은 줘야 하는데 3만원씩에 샀다"며 싱글벙글했다. 이준희 전 체코 대사가 현지에서 구입한 전원 풍경의 유화 그림을 흥정 끝에 5만원을 깎아 25만원에 사갔다.
사연이 담긴 물건도 눈길을 끌었다. 최종문 외교부 남아시아태평양국장은 베트남 전통학교를 실로 수놓은 대형 그림을 내놨다. 쑥스럽다며 이름을 안 밝힌 최 국장의 부인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고위관리가 선물한 것인데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해서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동남아시아에서 기념으로 산 그림ㆍ옷ㆍ가방을, 신각수 제1차관 부인 홍소선(52)씨는 이스라엘에서 구입했던 화장품과 비누, 정완용(60) 배우자회 회장은 테이블보ㆍ꽃병ㆍ목각인형 등을 내놨다.
1989년부터 소규모로 시작된 이 바자는 1994년 배우자회가 사단법인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로 이어져오고 있다. 배우자회는 그간 수익금으로 350여 불우 가정을 도왔고, 현재도 100여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정완용 회장은 "올해 행사도 성황리에 마쳐 기쁘다"며 "수익금은 배우자회 간부들과 협의해 도움이 정말 절실한 분들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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