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한 치라도 흐트러질새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군복에는 저마다 별이 반짝였지만 장병들을 호령하는 지휘관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열린 4일 국방부 대회의실은 마치 신병훈련소의 정신교육 시간을 연상시켰다. 이 대통령은 4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며 회한에 사무친 충고를 거침없이 쏟아냈고 군통수권자와 마주 앉은 110여명의 장군들은 이를 꼼꼼히 받아 적으면서 각오를 다졌다. 무엇보다 건군 이래 최초로 대통령이 군 지휘부를 소집했다는 중압감이 참석자들을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다.
오전 10시30분께 회의실에 들어선 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국민의례 때 가슴에 손을 얹지 않고 거수경례로 태극기에 예를 표했다. 군통수권자로서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이 대통령은 자리에 앉자 마자 “천안함 용사들을 피눈물 속에 떠나 보냈다”고 말문을 연 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천안함 침몰 이후 드러난 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군은 어떠한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군이 모든 면에서 쇄신해야 한다”고 강도 높은 변화를 주문하자 참석자들은 마른 침을 삼켰고 회의실을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은 터질 듯 고조됐다.
이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을 국군의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반드시 기억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고해성사와 다를 바 없는 김 장관의 발언에 일부 참석자는 살짝 고개를 떨궜다. 김 장관은 “군이 초기 과정에서 미숙한 대처로 국민들의 안보 우려를 자아냈다는 점을 인식하고 추후 일사 분란한 위기 관리 체제를 갖출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침투 및 국지 도발에 대한 군사력 건설을 재조정하고 이완된 정신을 새롭게 무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그런 자성과 각오가 신속하게 현실로 이어져야 한다”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최고 지휘관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회의는 당초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어 2시간이 지난 낮 12시30분께 마무리됐다. 한 참석자는 “해군뿐 아니라 육ㆍ공군도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군사 대비 태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며 “야전 지휘관들이 각자의 의견을 진솔하게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국방부 영내에 있는 국방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한식으로 오찬을 함께했다. 무거운 회의 분위기와 달리 이 대통령이 주로 군 지휘관들을 격려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에는 김 장관 주재로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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