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남 통영시를 각기 따로 방문한 문경(김상경)과 중식(유준상)은 막걸리를 마시며 즐거웠던 추억들을 한 토막씩 교환키로 한다. 문경은 그곳에서 만나게 된 관광해설가 성옥(문소리)과의 좌충우돌 연애담을, 중식은 자신의 정부 연주(예지원), 후배 정호(김강후)와 겪은 연애사건을 풀어놓는다. 서로는 결국 눈치채지 못하지만 성옥과 정호를 매개로 문경과 중식의 경험은 맞물려 있다.
'하하하'는 다 큰 성인들이 술 마시고 어린양을 부리거나 짐짓 젠체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자주 웃음을 부른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이 그렇듯 굴곡진 드라마로 이어지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웃음 섞인 연민을 유발한다. 인간의 내밀한 위선과 욕망을 까발리는 홍 감독의 날카로운 연출이 또 한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를 좀 더 가벼운 터치로 접근하려는 홍 감독의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난 의도에 약하다. 그냥 내 생겨먹은 대로 영화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촬영 당일 아침에 대사를 제시하는 작업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난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용의 70~80%가 촬영 중에 나온다. 영화는 찍는 과정에서 완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 번째 작품 '오!수정'까진 시나리오를 미리 썼다. 그런데 현장에서 결국 많이 고치더라. 즉흥성과 영화 속 인물과 사물 등은 같이 간다. 하지만 대사는 토씨 하나까지 미리 다 쓴다."
홍 감독은 '하하하'로 5월 개막하는 제63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빙돼 6번째로 칸을 방문하게 됐다. 상 욕심을 낼 만도 한데 그는 "정말 그걸 목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며 반문했다.
흥행에 대해서도 그는 딱히 욕심내지 않았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할 것을 제대로 하고 있냐"라는 것이다. "숫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관객이 내 영화를 어떻게 봤냐가 중요하다."
전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처럼 이번에도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촬영에 나섰다. 제작비는 1억 남짓. 홍 감독은 "사람들이 안 보면 제작비를 줄이면 된다"고 말했다. '해운대'의 100분1도 안 될 제작비지만 그는 "작업환경이 열악하거나 모자라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명료한 맛이 있는 영화들에 난 양이 안 찬다. 우리의 삶은 어떤 주제나 교훈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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