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이라는 개념이 정착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동양의 정신문화와 서양의 자연과학 사이의 상통하는 맥은 오래 전부터 주목 받았다. 이론물리학으로 베일을 벗은 우주의 진면목이 힌두교나 불교, 노장사상, 양명학 등이 품고 있는 우주관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이시우(72ㆍ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 가운데 불교의 우주관에 매료돼 별의 생주이멸(生住異滅)에서 부처의 내면을 읽는 천문학자다. 그가 초기 불교의 우주관을 해석한 책 (민족사 발행)을 냈다.
"한국 불교는 너무 공(空) 사상에 치우쳐 있어요. 좁은 인간의 마음에 초점이 맞춰져 불교의 위대한 우주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은 공보다 연기(緣起) 사상이에요. 연기란 둘 이상의 존재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동적인 관계를 말하는데, 그 연기적 과정이 무상(無常)하다는 데서 결국 공도 빚어지는 거죠."
익숙한 대승불교 경전이 아니라 초기 불교 경전에서 우주의 원리를 찾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교수는 연기론에 대한 설명을 길게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아함경' 등 초기 경전에 담긴 부처의 우주관의 요체는 연기다. 그런데 그것이 중국으로 넘어가 선불교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유심주의의 색채를 띠게 되고 연기는 부수적인 것이 됐다는 것. 그는 인불사상(人佛思想ㆍ'인간이 곧 부처'라는 사상)에만 매몰된 이런 불교로는 첨단과학과의 융화, 환경과 생태위기 대응 등에 있어서 불교가 가진 본래 가치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강경'의 첫 구절도 부처를 중심으로 한 승가 집단의 모습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연기적 관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은 상호의존적 연기 관계를 이루면서 진화해요. 우주를 봐도 별이 모여 성단을 이루고 성단이 모여 은하를, 은하들이 모여 은하단을 형성합니다. 화엄에서 말하는 육상원융(六相圓融ㆍ우주를 하나의 통일적 화합체로 보는 사상)이 우주에 펼쳐져 있는 거예요. 공이 아니라 연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교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도 연기론적 세계관과 연결지었다. 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로, 불교적 사유에 원용될 때는 흔히 색즉공(色卽空ㆍ만물은 본디 고유한 존재성이 없다)의 사상을 드러내는 레토릭으로 쓰인다. 이 교수는 "모든 물리량이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확률적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이, 곧 우주가 연기적 세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책에서 여러 천체에 대한 해설부터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들, 서로 다른 입장의 우주론 관점들을 소개하며 그것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과 어떻게 통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왜 불교가 우주과학시대에 필요한 가르침인지를 드러낸다. 그는 "한국 불교는 심법(心法)이라고 표현되는, '인간의 틀'에 갇힌 불교의 성격을 띠고 있다"며 "초기 불교 경전에 담긴 부처의 목소리는 그 틀을 벗어나 우주만유의 제법실상에 대한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말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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