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둘러보고 왔다. 많은 영화인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였고, 영화도 두 편 봤다. 관람을 권하고 싶은 좋은 영화들이었다.
중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사지가 절단된 채 돌아온 한 일본군인과 그의 아내의 사연을 담은 일본영화 '캐터필러'를 보면서 군국주의의 허상이 느껴졌다. 와카마츠 코지라는 문제적 감독이 연출한, 올해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따끈한 신작이다.
'하데비치'는 감독 브뤼노 뒤몽의 이름만으로도 국내 시네필들의 가슴을 두드릴 영화다. 한 프랑스 소녀의 아랍계에 대한 연민과 고뇌를 통해 신과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칸영화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만 두 번 수상한 뒤몽의 영화는 단 한차례도 국내 개봉한 적이 없다.
두 작품 외에도 흥행성이란 그늘에 가려져있던 많은 수작들이 전주를 찾았다. 전주영화제가 평소 쉬 볼 수 없는 영화들과 관객들을 이어주는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주영화제는 해마다 부쩍 성장하고 있다. 영화도 영화지만 전주가 지닌 매력이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걸어서 1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고사동 '영화의 거리'는 밀도 있게 축제를 즐기도록 도와준다. 지척의 한옥마을은 고도의 묵은 향을 진하게 풍긴다. 한 여성 직장인은 "맛있는 음식과 고풍스러운 건물을 만나는 것만으로 즐겁다"고 말한다.
영화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구 60만 명 가량의 중소도시가 치르는 영화제라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영화 위주의 상영 방식이 대중과 거리감을 둔다는 비판도 있다. 영화제의 성장과 더불어 고민도 커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토론토영화제에서 만난 독일의 한 여행작가는 전주영화제 이야기를 꺼내자 눈빛을 반짝이며 강한 호기심을 나타냈다. 고옥들이 즐비할 듯한 극동의 조그만 천년 고도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향연은 어느 서양인이 들어도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전주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5만㎡ 가량의 경기전이 있고,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전동성당도 있다. 문화재 보호 목청이 높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또 다른 극장으로의 변신을 시도할 만도 하다. 경희궁에서 뮤지컬 '대장금'을 공연하는 시대다. 세계적 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전주=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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