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특별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의 부모는 이따금 절에 가셨지만 그렇다고 불교신자라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내외는 은평구 역촌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셨던 김창석 신부에게서 천주교 영세를 받았다. 그러나 성당미사에 매주 나가지는 않으니 말하자면 부실한 신자인 셈이다. 1984년 5월 타계하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영세를 받았는데 상을 당했을 때 장례절차를 주관한 천주교 교우들의 정성을 보고 우리는 큰 감명을 받았다.
큰아들 내외도 천주교를 믿고 있는데 막내아들 내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그래서 제사를 지낼 때는 온 가족이 모두 절을 하는데 막내아들 내외는 서서 기도만 올린다. 가정에서 이러한 종교의 다양성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석 신부는 미국 피츠버그의 듀케인 신학대학을 나온 분인데 깨달음과 지성이 매우 깊은 분이었다. 신자들이 천당이 정말 있는가 물으면 나도 안 가봐서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분이었다. 기독교 정신을 철학적 바탕 위에서 이해하고 말보다도 영혼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으로 흔히 있는 세속적 종교인과는 다른 분이었다.
그 분은 6ㆍ25전쟁 때 해병대 군목으로 종군하여 사선을 여러 번 넘었고 당시 해병대 장교였던 홍성철 청와대 비서실장과 뜻을 모아 상록회라는 자선 모임을 오래도록 이끌었다. 나는 늘 이 모임에 참여해왔는데 이 두 분이 모두 작고한 뒤에는 이 모임도 없어져 버렸다. 이 분은 천주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총괄책임을 맡기도 했는데 93년 5월 타계하셨다. 우리 내외는 이 분과 각별히 가깝게 지냈다. 특히 아내는 몇몇 신자들과 같이 이 분에게서 수년 동안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김창석 신부 주변에는 문인과 언론인 등 지성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이들 신자들을 중심으로 92년 1월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는데 우리 내외도 여기 참여하였다. 서울을 떠나 덴마크-이스라엘-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프랑스-스페인을 방문하는 여행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은 텔아비브- 갈릴리 호수- 요르단강 계곡- 예리코- 사해(死海)- 예루살렘- 베들레헴을 차례로 순례했는데 어디를 가나 3,000년 이전의 고대와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고, 이런 저런 종교의 역사가 숨쉬고 있으며, 어디를 가나 유태인과 아랍인 간의 인종갈등이 노출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신비스러운 땅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 위아래 집 이웃으로 살던 마을 나사렛과 생선 2마리와 5개의 빵으로 5,000명을 먹였다는 5병2어 성당도 찾아보았다. 예수가 산상 설교를 했다는 진복팔단 성당은 갈릴리 호수가 내려 보이는 절경지에 세워졌는데 거기서 양들이 풀을 먹고 있는 모습이 평화롭기만 했다.
갈릴리 호숫가의 도시 티베리아스에서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 사이로 흐르는 요르단강은 붉은색의 건조한 사막 계곡을 따라 사해 쪽으로 흐른다. 아랍인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이 길을 따라가면 1만 년 전의 고대도시가 땅속에 묻혀있는 해저 350미터의 오아시스 도시 예리코에 이른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수도인 이 작은 도시는 3,000년 전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와 맨 먼저 공략한 도시였다. 요르단 강에서 들어오는 물이 나갈 곳이 없어 죽어버린 사막 속의 호수 사해는 바다 물 염도가 3도인데 염도가 무려 35도에 이르러 짜다기보다 쓴 맛이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예루살렘은 유대교 회교 기독교 등 3개종교의 성지이며 기독교도 회교도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등 4개 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어디를 가나 신비로운 종교적 숨소리를 담고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과 십자가의 길 그리고 통곡의 벽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현장 등등을 성경을 찾아 확인하면서 둘러보았다.
이태리에서는 로마교황청의 웅장하고 화려한 예술품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2000 년 전에 로마 교외에 만든 지하 4층의 공동묘지 카타콤베가 감동을 주었다. 로마에서 프란체스코 성인의 출생지인 아씨시 성당과 피렌체를 거쳐 프랑스와 스페인의 유서 깊은 대성당 들을 참배 했다.
이 여행이 내게는 종교가 사회발전에 얼마나 막중한 영향을 미쳐 왔는가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각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공부하다 보면 기독교 국가들은 경제발전에 성공한 반면 토속종교나 회교 등 기타종교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주장이 많았다. 예컨대 회교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점, 이자를 죄악시하여 금리정책을 쓰기 어려운 점, 음력 9월 한 달간의 금식기도, 일부다처제의 허용 등을 발전 제약요인으로 지적하는 일이 많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기독교의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정신이 자본주의 정신과 합치한다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확인한 것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기독교가 국민생활과 국민정신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예배를 위해 교회에 나가는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도시의 큰 성당에서도 미사에는 많아야 수십 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점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