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4년 3개월여 만에 중국을 방문할 경우 가장 우선적으로 천안함 사고를 둘러싼 한반도 정세를 논의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발언에서 어느 유추된다. 후 주석은 30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참석차 방중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북중) 쌍방 사이의 친선 내왕과 협조를 부단히 발전시키고 국제무대에서 서로 지지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천안함 사고 원인 조사가 진행될수록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북한에게 중국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해자에게 응분의 대가를 묻는 행동을 취할 경우 북한에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의 협력은 사활적인 사안이 된다.
특히 30일 후 주석을 만난 이명박 대통령이 사고 조사 과정을 설명하면서 비접촉 외부폭발에 의한 침몰이라는 1차 조사 결과를 전한 상황은 북한에게 상당한 압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관측통들은 2일 "김정일 위원장이 한중 정상회담에서 개진된 한국측의 강력한 입장을 중국으로부터 전해 듣고 부랴부랴 방중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정도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천안함 사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북중간 협력을 타진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김 위원장은 "북한 개입설은 한국의 모략"이라는 북한 관영 언론의 주장처럼 개입 가능성을 전면 부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무조건 김 위원장의 주장만을 듣지는 않을 듯하다. 후 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측의 과학적 조사를 평가했다. 이는 신뢰할 만한 결과라면 중국도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의를 보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또한 6자회담을 천안함 사고와 별개로 다루려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천안함 사고에 개입하지 않은 만큼 6자 회담은 현정세와 무관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견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회담 복귀 시기 등에 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힐 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경제적 지원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중 당시 중국이 약속한 규모 이상의 지원을 김 위원장이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동북지방의 대북투자 확대, 원유 및 식량지원, 북중 접경 신의주 일대에 대한 중국의 투자 등이 의제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할 경우 북한은 향후 고위급 특사를 러시아에 보내 한국 주도의 국제사회 공조 모색에 제동을 거는 액션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편 김 위원장의 방중이 이뤄진다면 한중 관계에도 미세한 파장이 예상된다. 30일 한중양국 정상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강화를 언급한 후 며칠 만에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은 분명 모양상 좋지 않다. 더욱이 중국 측이 김위원장의 방중 관련 정보를 한국측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양국간 신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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