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남쪽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번에는 정부 축산연구기관마저 구제역에 감염됐다. 방역망의 구멍이 속속 드러나고, 바이러스 활동성이 극대화되는 5월과 맞물리면서 인천 강화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경기 김포-충북 충주-충남 청양을 거쳐 영ㆍ호남으로까지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충남 청양군 정산면 소재 충남축산기술연구소에서 신고된 구제역 의심 돼지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검사 결과, 1일 양성으로 판정됐다. 지난달 8일 강화군 선원면 농장에서 구제역이 최초 발생한 이후 10번째 감염 사례다. 바이러스 혈청형은 지금까지의 것과 같은 'O형'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방역 당국은 한우 303마리, 칡소 14마리, 돼지 1,223마리 등 총 1,540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고, 연구소 반경 500m 내의 농장 및 연구소와 역학적으로 관련된 농장의 우제류 5,850마리도 매몰 처분했다.
어떻게 뚫렸나
구제역이 감염된 연구소는 8번째 구제역 발생 농장(충북 충주)에서 96㎞나 떨어진 곳. 이는 당국이 설정한 방역대를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감염경로가 파악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뚜렷한 역학관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연구소가 연구용으로 쓰고 버린 돼지 4마리를 출하하는 공판장에도 강화 구제역 농장의 가축의 출하됐던 사실을 확인하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혈청형이 같고 연구소와 강화 농장이 같은 곳에 가축을 출하해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하 날짜가 각각 4월4일(강화 농장)과 14일(연구소)로 큰 차이가 나 직접적 연결 가능성은 낮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특히 연구소는 평소에도 3중, 4중의 방역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어서,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문을 통과하는 차량에 대해 자동 소독시설을 갖췄으며, 축사는 하루 1차례 이상 소독이 이뤄지고 있다. 또 방역복을 입지 않으면 아예 출입이 제한될 정도로 방역이 철저한 곳이기도 하다.
높아지는 확산 가능성
방역 당국이 예방적 살처분 등의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피해 확산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축산연구소는 충북도내 축산분야 연구개발의 산실로 2006년부터 현재 위치에서 축산농가에 ▦우량종축(정액)을 공급하고 ▦가축개량 및 축산기술 보급을 해오던 곳이기 때문. 농식품부 관계자도 "일반 가축 농가는 구제역에 걸려도 축산연구소가 걸려서는 안 되는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탄했다.
한편 종전 최고인 2000년(3개 도)와 비교할 때 이번 구제역의 발생 범위(4개 시ㆍ도)가 가장 넓다는 점도 추가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동시 다발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 구제역은 지역은 넓지만 띄엄띄엄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게 특징"이라며 "구제역이 발생한 농장 주변으로는 방역활동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지만, 현재로선 안심할 수 없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살처분 규모도 늘어 경제적 피해도 사상 최고에 달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인천 강화, 경기 김포, 충북 충주 등에서 진행된 살처분 대상은 총 4만8,735마리에 달한다.
피해 확산 가능성이 고조되자 정부도 이날 총리실과 행정안전부, 농림수산식품부, 국방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등 중앙 행정부처와 충남도를 포함한 전국단위의 정부 합동지원단을 구성했다. 청양군에 인접한 홍성군, 서산시 등의 대규모 축산 지역에 대해 방역과 예찰을 강화하고, 전국의 지자체가 운영하는 종축장, 시험연구소 등 축산시설의 방역 실태도 일제 점검키로 했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청양군청 상황실을 방문, "청양 구제역은 일어나서는 안 될 곳에서 발생한, 상상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충남도와 청양군은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방제활동에 전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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