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러바인 지음ㆍ곽미경 옮김/좋은생각 발행ㆍ380쪽ㆍ1만5,000원
입는 옷, 타는 차,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개인의 정체성을 말하는 세상이다. 과연 쇼핑을 하지 않고도 사회와 단절되지 않은 채 살 수 있을까.
미국의 여성 전업작가인 주디스 러바인은 2003년 크리스마스 바겐세일 시즌, 신용카드를 한도액까지 그어대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장갑을 줍기 위해 몸을 굽히려다 들고 있던 쇼핑 봉투를 물웅덩이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순간 그는 치밀어오르는 짜증과 함께 쇼핑에 대한 회의에 휩싸였고, 이내 '굿바이 쇼핑'을 선언한다. 2004년 한 해 동안 생필품을 제외한 어떤 것도 사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은 러바인이 함께 사는 남자친구 폴과 함께 쇼핑을 하지 않고 보낸 1년 간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소재와 달리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 쇼핑 없이 사는 일상의 심리 변화를 일기처럼 담담하게 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저자는 필요와 욕구, 결핍과 안정, 소비주의와 시민의식, 애국심을 빙자한 국가와 기업의 소비 조장까지, 쇼핑을 둘러싼 여러가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펼쳐낸다.
쇼핑을 그만두자 시간은 넘쳐났고, 조바심이 찾아왔다. 스키를 탈 때 신던 최신 스마트울 양말이 없어지자 스키를 타는 것 자체가 싫어졌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지 못하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워졌다. 새것에 대한 금단 현상에 시달리던 저자는 때로는 아이쇼핑을 하며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쇼핑객들 주위로 새 구두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내 그것이 부유함이나 사치에 대한 부러움이 아니라 사람이든 물건이든 즉각적으로 소비하고 버리는 '일회성의 짧은 관계가 주는 값싼 전율'에 대한 갈망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쇼핑을 하지 않는 시간은 자신의 내면보다는 오히려 바깥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공공 도서관에서, 길거리에서, 산에서 이웃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면서 열악한 공공 환경에도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신간이 넘쳐나는 서점과 달리 공공 도서관의 책은 온통 분실 상태다. 저자는 정부의 민영화 정책이 값비싼 공공 문화시설에 대한 국가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 의식과 함께, 우리의 돈과 열정을 개인의 상품 소비에 써버리지 않는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힘겨웠던 1년의 프로젝트가 끝난 후 결산의 시간. 두 사람은 한 해 전보다 8,000달러를 절약했고, 그로 인해 12개월 중 3개월을 쉴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며 기부금을 더 많이 낼 수 있게 됐다. 집안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돈 때문에 단 한 차례도 싸우지 않았고, 짜릿한 쇼핑의 쾌감이 없는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알게 됐다.
책 뒤에 실린 인터뷰에서 러바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물건을 갈망한 것이 아니라 '물건이 욕구를 편성하는 방식과 그와 잇닿은 삶'을 갈망했던 것이었다. 시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에는 쇼핑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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