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자신만의 미감이 있고 미학이 있다. 복원된 청계천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면 콘크리트 미학이 자신의 미학이고, 이게 불편하다면 자신의 미감은 다른 셈이다. 새만금 방조제에 올라서보면 자신의 미학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거대한 인간의 힘이 웅장하게 느껴진다면 콘크리트 미학이 자신의 미학이고, 이게 불편하다면 자신의 미감은 다른 것이다.
서울은 행정도시이고 울산은 공업도시이다. 당연히 서울이 울산보다 생태 조건이 좋아야겠지만, 미세먼지 등 대기조건은 울산이 더 낫다. 그렇다면 강은? 당연히 서울이 더 나을 것 같지만, 진짜 살아있는 강은 태화강이다.
한강은 물고기가 산란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은 강이고, 수질도 최근 급속히 악화하고 있는 중이다. 공업도시 울산의 태화강 수질은 공장들의 폐수처리시설과 도시 폐수에 대한 수처리로 좋아졌고, 보를 없애면서 연어가 돌아오게 되었다. 이 태화강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자신은 생태미학의 소유자일 것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650개의 댐을 철거하였고, 위스콘신주에서는 73개를 철거하였다. 생태계 회복과 함께 생태미학의 시대에 미국은 선진국이다. 독일의 뮌헨은 직강화한 도시 하천의 콘크리트 제방을 뜯어내고 다시 생태적 하천으로 복원하고 있고, 스위스의 투어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강에는 잠실보와 신곡수중부 2개의 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시 미관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는데, 결국 이 2개의 보와 함께 콘크리트 제방으로 하천으로서 한강은 죽었다. 콘크리트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도시미학의 시절에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적으로 생태미학이 돌아오면서 죽어버린 한강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2개의 보를 철거하고 생태복원을 시도하면, 한강에도 회류성 어류가 돌아오게 된다. 상류지역에 오염물질 유입차단을 더 철저하게 하고, 강 자체의 정화능력을 살려서 생태적 생명력을 되돌리는 일, 이게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생태미학의 시대, 우리도 지금 그 시대로 가는 중이다. 울산은 그렇게 했다.
서울은 왜 못하는가? 공업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 시민보다 생태의 중요성을 먼저 느꼈고, 먼저 생태미학으로 전환했기 때문일 것 같다. 서울이 울산에 비해 돈이 없는가, 기술자가 없는가, 과학자가 없는가? 다만 생태미학이 늦게 왔을 뿐이라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콘크리트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과거의 미학이다. 21세기는 생태의 시기이고, 그래서 미학도 거기에 따라 새로운 사조가 지금 등장하는 중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만 지금 뒤로 가는 중이다. 콘크리트는 영원하지 않다.
한강에 있는 2개의 보를 철거하는 생태복원의 계획을 지금부터 수립하자. 더도 말고, 딱 울산만큼만이라도 하자. 한강 백사장에서 어린이들이 뛰어 놀던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시라.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지시는가?
거기에 새 시대의 생태미학이 숨쉬고 있다.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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