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권상미 옮김/문학동네 발행·496쪽·1만3,800원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54ㆍ사진)의 연작소설집으로, 지난해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미국 메인주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은퇴한 전직 수학교사인 올리브 키터리지와 그녀의 가족, 이웃을 각각 주인공으로 한 단편 13편이 수록됐다.
수록작 중 거구에 괄괄한 성격인 올리브와 그녀의 남편 헨리, 외아들 크리스로 구성된 키터리지 가족의 대소사를 다룬 가족소설 계열의 단편들은 장편처럼 연계해 읽어도 좋겠다. 가장 먼저 쓰여졌고 이 연작소설을 구상하는 계기가 된 단편 '작은 기쁨'은 서른여덟 살 아들 크리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올리브의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외동아들을 품에서 내놓는 허탈감을 느끼며 피로연장인 아들의 신혼집 침실에 혼자 누워있던 올리브는 우연히 며느리 수잔의 말을 엿듣는다. "그이(크리스)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 그리고 외동아들인 게 그이한테는 정말 죽음이었지." 올리브는 수잔의 스웨터를 망가뜨리고, 브래지어와 신발을 훔친다. 미처 몰랐던 아들의 본심을 알게 해준 며느리에 대한 그 우스꽝스러운 복수가 어쩐지 안쓰럽다.
결혼한 아들과 의절한 듯 냉랭하게 지내던 올리브가 임신한 며느리 대신 집안일을 해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몰래 기뻐하며 뉴욕에 갔다가 되레 모자 간의 갈등만 키우는 과정을 다룬 '불안'에서도 문장을 일절 낭비하지 않고 인물 심리를 생생히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에 찬탄하게 된다.
키터리지 가족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자살을 결심하고 고향에 온 정신과 의사 케빈이 학창시절 선생님이었던 올리브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의욕을 회복하는 이야기 '밀물', 마을 술집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는 베티가 오랜만에 그녀를 찾아온 첫사랑에게서 충격적 사건을 전해 듣는 '피아노 연주자' 등이 있다. 모두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느닷없이 찾아드는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빼어난 단편들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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