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출근이라는 것을 다시 하게 됐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다가 내게 들고 다닐 만한 '점잖은' 가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내가 너무 많은 가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10여 년 전 히말라야에 갔다가 휴양도시 포카라에서 산 가방이 제일 오래된 것이었다.
손으로 짜서 만든 가방인데 가로로 길쭉하게 생긴 황금색 가방이다. 평양을 갔다 온 카메라 가방도 있고, 동티모르를 다녀온 등산 배낭도 있다. 그 속에 백화점에서 받은 기저귀 가방도 있다. 사은품으로 받은 것인데 처음에는 기저귀 가방이라는 것을 몰랐다.
여행 갈 때 들고 갔다가 일행들을 웃음바다를 만들었던 가방이다. 외국공항에서 누군가가 사준 어깨걸이 녹색가방도 있고, 노트북은 사라지고 매뉴얼만 담고 있는 가방도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가방도 여러 개였다. 가방마다 사연이 있고 가방마다 추억이 있었다.
그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가방도 있었다. 내가 쓰고 버린 가방은 또 얼마겠는가. 사람의 일생 동안 많은 가방들이 인연처럼 스쳐간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가방에 담았던 것은 물건이지만 세월이 지나가고 유행이 지나가고 나면 가방 속에는 추억이 남는다. 가방 하나하나를 꺼내 먼지를 털어주면서 나는 빈 가방에 가득히 들어있던 추억으로 행복해진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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