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질보증 '암행어사' 불시 출두… "티끌도 잡아낸다"
23일 충북 청원군 한화 L&C 부강공장 전자소재 생산 현장. 직원들이 노란색 네모난 판을 들고 요리보고 조리보고를 반복한다.
현재혁 소재생산팀 과장은 "휴대폰을 비롯해 전자제품에서 전원을 공급하고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회로 기판에 보호 필름을 입힌 다음 그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직원들은 생산 라인에서 물건을 만드는 중간중간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점검은 전체 공정 중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생산 라인 바로 옆에는 제품 테스트를 위한 실험 기자재들로 가득찬 실험실이 있었다. 이 곳에서는 회로를 만드는 재료와 보호 필름을 늘리고 잡아당기고 뜨겁게 달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제품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략 회로에 쓰이는 필름의 치수안정성, 내굴곡성, 내열성, 절연저항 등 10개가 넘는 항목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을 진행한다는 게 현 과장의 설명. 바로 옆 방에는 또 다른 설비가 있다. 휴대폰 제조 공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현 과장은 "휴대폰 제조 공장에 있는 공정 그대로 갖춰 두고 우리가 만든 제품의 품질이 제대로 유지되는 지를 테스트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 쉼 없이 품질 관련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꼼꼼하게 남기다 보니 관련 서류만 하루에 두꺼운 책 2권 분량이 될 정도라고 한다. 현 과장은 "티끌 하나라도 생기면 제품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품질 관리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강공장의 품질 관리는 이원화 체계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우선 공장장 직속의 '품질보증그룹'이 품질 경영 시스템과 전산 프로그램 운영 등 공장 전체를 총괄 관리한다.
이승용 환경기술실 차장은 "생산을 하는 사람은 불량률이 높아지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검사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며 "별도 조직이 품질 검사를 맡아야 객관성을 얻을 수 있고 좋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1980년대 초 공장이 생길 때부터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17명의 품질보증그룹 소속 직원들은 공장 내에서 '암행어사'로 불린다. 품질 검사 업무만 도맡아 하는 이들은 하루에 한 번 공장 곳곳을 불시 점검한다. 그리고 원료부터 제품 만드는 공정, 완제품까지 샅샅이 살핀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샘플을 가져와 실험실에서 정밀 검사를 실시한다. 품질보증그룹 관계자는 "평소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라도 품질 검사만큼은 인정사정 없다"며 "야속하리만치 치밀한 검사가 결국 공장도 살리고 우리도 살린다는 생각으로 검사에 나선다"고 말했다.
품질 관리원들은 평소 생산 라인에 있는 직원들 이상으로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에서 연구한다고 한다. "원료가 바뀌거나 공정에 변화를 가져오면 담당 품질 관리 요원들은 가장 먼저 그 내용을 파악하도록 한다"는 이 차장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품질 검사에 적용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달이 생산부서와 품질보증그룹 관계자들은 한데 모여 품질 검사와 생산 과정에 대해 집중 토론을 벌인다. 무작정 잘못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품질 향상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고 문제점을 풀 수 있는 해답을 찾자는 차원이다.
이와 함께 전자 소재, 자동차부품 제조 파트는 따로 품질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 들어 시작한 사업이고 품질 자체를 보다 정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두 공정 모두 각각 10명 남짓의 품질관리원들이 속한 별도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
이 차장은 "생산 라인에서 한 번 품질의 이상 유무를 따져보고 품질 관리 전담 요원들이 또 한 번 살펴보는 2중 점검 시스템"이라며 "800명 현장 직원 모두 제 아무리 꼼꼼하게 점검해도 불량은 늘 생길 수 있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가장 냉혹한 고객의 점검이 남아 있다. 자동차부품 파트의 품질을 담당하는 안규찬 차장은 "도요타 사태 이후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결국 좋은 부품에서 좋은 차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우리 역시 품질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휴대폰용 전자소재의 경우 부품을 만드는 회사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부품을 최종 조립하는 전자 회사 관계자들까지 소재의 품질을 살펴보겠다며 공장을 직접 찾는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 진 물건이 공장을 떠난다고 품질 관리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화 L&C는 2008년부터 실시간 소비자 불만 접수 프로그램 'VOC(Voice of Customer)'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소비자가 콜 센터로 전화를 걸거나 온라인에 불만 사항을 접수하면 즉시 영업이나 생산을 담당하는 현장 관련 직원에게 내용이 통보되고 그 처리 결과를 고객에게 알려주는 것.
이전에는 콜 센터 직원이 접수를 받고 이를 모아서 담당 직원에게 알렸기 때문에 처리에 시간도 걸리고 제대로 처리가 안 될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새 시스템은 실시간으로 현장까지 바로 전달이 되고 이를 관련 임원이나 품질관리 요원들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품질 향상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차장은 "공장 관계자들은 품질 관련 접수 내용과 그 처리 결과에 대해 내부 토의를 진행한다"며 "생산자 입장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객이 주는 것이기에 품질 관리에 있어서는 너무나 소중한 정보"라고 말했다.
■ 김동필 부강공장 공장장 "신뢰 무너지는 건 한 순간… 소비자 만족이 최고 진리"
"품질에 대해서는 작은 실수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시장과 소비자들입니다. 한 개의 불량품도 공장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김동필 한화 L&C 부강공장 공장장(상무)은 온화한 얼굴과는 달리 품질의 중요성을 말 할 때는 목소리에 강단이 넘쳤다. 2007년부터 부강공장을 책임져 온 그는 "수 십 년 동안 쌓아온 명성과 신뢰도 단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며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일본의 도요타가 하루 아침에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요타 사태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한화 L&C는 품질 관리에 문제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 봤다고 한다. 김 공장장은 "기존에 운영하던 VOC(Voice of Customer)라는 이름의 시스템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해 고객의 목소리를 지상명령으로 여기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고 전했다.
올해 공장 운영 방침을 '고객 지향적 품질 실현'으로 정한 것 역시 제 아무리 잘 만든 물건도 소비자가 만족하지 못하면 소용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최고의 가치라는 점을 공장 구성원 모두가 되새겨보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특히 설비 오류, 작업자의 실수 등 여러 이유로 불량 제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설비의 개선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정마다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검사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게 김 공장장의 설명이다. 촘촘한 '그물망 수비'로 단 하나의 불량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라고 한다.
부강공장은 품질관리만 전담하는 '품질보증그룹'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생산 라인 관계자들이 제시하는 샘플 위주로 이뤄지던 원료 및 제품 검사를 올해부터는 불시점검으로 과감히 바꿨다는 게 김 공장장의 설명. "공장 전체를 담당하는 17명의 요원들과 자동차부품, 전자소재 공정을 담당하는 20여 명까지 40명 가까운 요원들이 예고 없이 현장을 찾아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는 그는 "처음에는 많이 당황하던 현장 직원들도 이제는 잘 적응하고 있고 품질 관리 면에서 성과도 좋다"고 말했다.
청원=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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