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천안함 46명의 용사들은 유가족의 오열과 국민의 애도를 뒤로 한 채 영면했다. 하지만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으로, 효심이 남다른 아들로,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해군으로 살아온 46용사들의 생전 모습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생전 희생 장병들의 애절한 사연을 통해 짧지만 강렬했던 용사들의 삶을 되돌아 본다.
남기훈(36) 원사는 신장병을 앓는 아버지와 먼저 하늘나라로 간 형의 병원비를 혼자 감당한 집안의 대들보였다. 함정에서 손수 만들어 부인에게 선물한 십자수는 그를 떠올리는 아이콘이 됐다.
고3 때 교통사고로 양친을 잃은 김종헌(34) 상사는 대학 진학까지 포기하고 두 동생을 뒷바라지 한 가정의 대들보였다. 집안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그는 너무 일찍 부모의 뒤를 따라갔다.
두 딸과 부인을 남기고 떠난 문규석(36) 원사는 천안함 침몰 사고 5분 전 딸에게 전화를 했지만 가족들은 받지 못했다. 누구보다 자상했을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딸은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최정환(32) 상사는 생후 석 달 된 딸을 제대로 안아 주지도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다. 김태석(37) 원사 역시 세 딸과 부인만 남겨 두고 사고를 당했다. 5월 결혼식을 앞둔 강준(29) 상사는 사랑스런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보지 못하고 바다 속에서 스러졌다.
부모를 끔찍이 생각했던 효자들도 많았다. 박보람(24) 중사는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부은 정기적금 만기를 한 달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홀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입대한 김동진(19) 중사는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덜겠다'며 사고 4개월 전 입대한 정태준(20) 일병도 부모보다 먼저 눈을 감고 말았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한 심영빈(26) 중사는 부모의 짐을 덜어 주려고 장기복무를 신청했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부산에 홀로 있는 아버지에게 올해 여름 에어컨을 장만해 드리려고 했던 조진영(23) 중사도 이 효도를 다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역전의 용사들도 이번엔 화를 피하지 못했다. 2002년 2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군과 싸우다 큰 상처를 입고도 극적으로 살아남은 박경수(29) 상사는 이번에는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박 상사는 시신조차 발견하지 못해 산화자로 처리되면서 가족들의 고통은 두 배로 컸다. 1999년 1차 연평해전 당시 속초함 전파탐지사로 출전했던 이창기(40) 준위도 부인과 아들을 남겨둔 채 세상과 이별했다.
함정 근무 기간 6개월을 모두 채웠지만 가족 같은 천안함의 분위기가 좋아 육상근무를 마다하고 천안함에 잔류했다 변을 당한 용사들도 있다. 5월 제대로 앞둔 이상민(22) 하사와 배를 끔찍이 좋아했던 강태민(21) 상병은 그토록 사랑했던 천안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해군 입대 70여일 된 천안함 막내 장철희(19) 일병은 승선 8일 만에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장 일병의 부친은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이었다.
미래를 꿈꿨던 젊은이들의 꿈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사라졌다. 천안함 골든벨 퀴즈대회에서 1등을 했던 김선호(20) 병장은 전역 후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조리사 자격증만 5개를 갖고 있던 이상희(21) 하사도 일식 요리사가 되기 위해 제대 후 일본 유학을 계획했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