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 축구대표팀이 수난과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에 앞서 짐바브웨에서 갖기로 한 전지 훈련의 장소 변경도 그 중에 하나다. 원래 북한은 내달 23일부터 31일까지 짐바브웨 제2 도시 불라와요에 캠프를 차리고 평가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역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캠프를 수도 하레레로 옮기게 됐다. 짐바브웨 정부는 불라와요의 열악한 환경 때문이며 정치적 이유는 없다고 했으나 곧이 믿기 어려운 역사적 배경이 있다.
■ 1983년 짐바브웨 남부지역에서 독재자 무가베에 저항하는 대규모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다. 무가베는 최대부족 쇼나족으로 구성된 친위 제5여단을 동원, 소수부족 은데벨레족 2만여 명을 학살하고 강간과 고문을 자행했다. 그 5여단을 북한교관들이 훈련 시켰다. 불라와요는 집중적으로 학살이 벌어진 남부지역의 중심도시이니 북한에 대한 지역민들의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시민단체들은 짐바브웨 정부가 불라와요에 북한 팀의 전지훈련을 유치한 것은 당시 희생자와 생존자를 모두 모욕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 북한 월드컵 대표팀은 영국에서는 아예 평가전을 위한 입국을 거부당했다. 북한은 5월29일 런던에서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치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핵무기 생산국 팀의 입국을 허락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원래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한-나이지리아 평가전은 북한이 초청팀 항공료를 내지 못한다고 해 연기됐었다. 북한은 아프리카 빈국의 하나인 스와질랜드에는 전지훈련을 가는 조건으로 190만 릴랑게니, 미화 28만 달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해 스타일을 구기기도 했다.
■ 북한 월드컵 팀은 이런저런 수난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해외 전지훈련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외화난 탓에 구걸에 가까운 전지 훈련일 게 뻔하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항공기 결항사태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발이 묶인 동안에는 남아공팀과 계획에 없던 평가전을 치르는 행운도 있었다. 어쨌든 의욕만은 대단해 보인다.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와르 등과 죽음의 G조에 속해 있지만 또 한번 이변을 일으켜 축구 강성대국을 과시하려는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국가 이미지를 털어내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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