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한 뒤 대응을 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9∙11테러를 막지 못했는데 천안함 사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다."
정부에 조언하는 한 안보 전문가의 진단이다. 미국 의회 9∙11테러 진상조사보고서는 위기 진단∙대응의 단위인 정보기관(점)들이 정보 공유 및 협력에 실패, 테러를 막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이 항공기 탈취범 칼리드 알 미드하르를 중심으로 한 테러조직을 추적 중이었고, 연방수사국(FBI) 역시 이들의 동태를 파악했지만 두 기관의 정보 공유는 이뤄지지 않았다.
파편 같은 정보들을 연결해 선으로 만들고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기민하게 대응했더라면 참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진단이 나온 후 미국은 정보 총괄조정 기구인 국가정보국(DNI)과 위기 대응 부처인 국토안보부를 신설했다.
천안함 사태에서도 위기 감지∙대응 단위였던 현장의 해당 부대, 해군 2함대사령부, 육해공 3군, 합동참모본부 등 '점'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천안함 침몰 30여분 뒤인 지난달 26일 밤 10시쯤 이명박 대통령이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 컨트롤타워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즉시 공격용 헬기와 전투기에는 출격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다. 공군 전투기는 침몰한 지 1시간 40분만에야 출동했다. 2함대사령부가 최고 비상경계령을 발령했지만 타군에게는 사고지점조차 정확히 통보되지 않았다. 3군이 따로따로였고, 컨트롤타워는 우왕좌왕하는 각 군과 함참에 대응을 맡겨둔 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 컨트롤타워는 현장, 3군 등의 상황을 장악, 합참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지휘했어야 마땅했다.
이런 현상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4월2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침몰 원인인 어뢰공격으로 추정하는 것이 실제적"이라고 밝히자 김 장관에게 "VIP(대통령)께서 (김 장관)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는 메모가 건네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청와대는 '사고 원인에 대해 예단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컨트롤타워의 한 축인 김 장관이 이런 인식을 공유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복원에 나섰다. 외교안보수석실 관계자는 28일 "컨트롤타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진단의 방향은 외교안보수석실에 집중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안보상황을 총괄 조정∙지휘했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와 사무처가 사라진 뒤 외교안보수석실이 이를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외교안보수석실은 외교안보전략을 관장하는 대외전략비서관, 외교비서관, 국방비서관, 통일비서관, 위기상황 정보를 취합하는 국가위기상황팀 등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모든 외교안보 관련 부처를 통할하는 기능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담당자들은 '친정 부처' 이해를 대변하거나 부처와의 연락 업무에 매달리는 게 고작이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특보 신설, 별도 안보 조직 신설, 국가위기상황팀 확대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임기응변식 아이디어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청와대는 현재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외교안보수석실과 정무수석실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안보체제 개편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와대 자체 논의만으로는 미흡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9∙11테러 직후 미국 정부가 만든 '블루리본위원회'와 같은 민관합동임시기구 설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이 대통령이 별도로 외교안보자문단에 천안함 사태 보고서 작성을 당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이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감사원의 국방부 특검 결과, 침몰 원인 규명 보고서, 외교자문단의 보고서, 국방선진화위원회의 검토 보고서 등이 나온 뒤에야 개편 윤곽이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외교안보수석실을 장관급 기구로 격상 확대 개편하는 방안, 과거 NSC사무처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 신설 방안 등이 비중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청와대 외교안보 조직을 지나치게 키울 경우 부처들이 설 자리가 축소된다"며 "다만 외교안보수석의 지위를 높일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각 대안들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분명한 방향은 컨트롤타워 기능의 강화"라고 말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